[르뽀]엔씨소프트 문화원정대 현장속으로

나의 한 발자국, 함께 걸어온 707km .

지난 7월 15, 16일 양일간 ‘도전하는 젊음과 열정, 그리고 나눔’ 2005년 대한민국 문화원정대에 참여했다. 25박26일 동안 진행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식 원정대는 아니고,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문단을 모집해서 1박2일이란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과 함께 걷고 생활한 것이다.

결론을 먼저 밝히자면, 힘들었다. 어떤 수식어나 감탄사도 필요없이 이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전 일정을 완수한 원정대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인상은 찌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대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 아니라 되돌아볼수록 곱씹어지는 추억이었다.

#순조로운 출발, 그러나 머나먼 목적지

15명의 방문단이 121명의 원정대와 합류한 지점은 해남 땅끝 해양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원정대원들이 방문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맣게 탄 원정대원들이 운동장 바닥에 앉거나 혹은 누워있었다. 그동안 20여일 간의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의 얼굴만 봐도 짐작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지쳐 있던 원정대원들이 방문단을 보자 하나 둘 일어나더니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들의 목소리는 활기차고 우렁찼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국토순례 대장정이 진행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땅끝마을 전망대를 거쳐 송호초등학교!

15명의 방문단은 남극, 북극, 백두, 한라 총 4개 팀에 각각 나눠 배치된 후, 원정대원들과 짝을 이뤄 출발했다. “기회는 왔다, 나에게도! 도전과, 열정과, 신념이 있다!” 힘찬 구호가 순조로운 출발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방문단이야 자기 배낭을 메고 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정대원들이 모두 자기 배낭을 메는 것이 아닌가. 707km의 먼 길을 가는 동안 26박27일의 생활의 무게까지 지고 가야 한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슬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흘러 내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작은 빗방울들이 모여 한두 줄기씩 떨어졌다. 그런데 원정대원 누구 하나 비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오히려 날씨가 좋다고 기뻐하기까지 했다.

20여일 동안 17일이 쏟아지는 폭우였으니 이 정도의 비는 비도 아닐 터. 우중 행보에 익숙한 원정대원들은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마저도 반가워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다 드디어 1차 목적지인 땅끝마을 전망대에 도착했다. 땅끝마을은 우리 국토의 최남단으로 이곳과 우리 국토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을 연결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긴 사선이 만들어지며, 이 길이가 삼천리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삼천리 금수강산’이란 말이 탄생한 거라고. 맑은 날 전망대에 오르면 푸른 남해 바다와 그 위의 작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데 이날은 안개에 싸여 하늘도 바다도 섬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육지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인 이곳에서 원정대원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막바지를 앞두고 있는 여정의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땅끝마을 전망대에서 의지를 다지고 이날의 최종 목적지인 송호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부터 원정대원들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오늘 드디어 보고 싶던 가족 및 친척, 친구들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콘서트도 마련되어 있었다. 송호초등학교 초입부터 보고 싶던 얼굴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원정대원들의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원정대원들 뿐만 아니라 방문단의 눈시울도 괜히 붉어졌다.

# 새삼 그리워진 사람들과 만남

원정대원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달려와 있었다. 그들은 원정대원들의 검게 탄 모습에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모양이다. 채 인사도 건네기 전에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보였고 애써 눈물을 삼키는 원정대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눈물과 기쁨의 만남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다 함께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한편, 이날 원정대원들을 찾아온 손님들은 가족 및 친지, 친구뿐이 아니었다. 탤런트 김을동, 사미자씨가 직접 방문해 함께 행군해 주었고, 2004년 대한민국 문화원정대들이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늘부터 마지막 날까지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단다. 그 어느 날보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콘서트 무대는 클래지콰이, 언니네 이발관, 불독맨션 세 개의 그룹이 꾸며주었다. 부모님 세대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그룹이었지만 남녀노소 모두 하나가 되었다. 부모님들은 원정대원들의 즐거운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나고, 원정대원들은 상처 가득한 발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방방 뛰어다녔다. 600km 이상을 걸어온 발은 콘서트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해 원정대원들의 뜨거운 열정을 든든히 뒷받침해 주었다.

# 뜨거운 태양을 삼켜버린 열정

다음 날 새벽 6시, 어김없이 하루 일과는 시작되었다. 전날 밤, 운동장 가득하던 텐트는 눈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원정대원들은 텐트를 펴고 접는 데는 이미 수준급이었다. 졸음을 쫓을 새도 없이 다시 행군은 시작되었다. 박영석 대장은 전날의 여진으로 마음이 흐트러질 것을 염려하며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을 거듭 당부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날씨까지 심상치 않았다. 아침 볕이 마치 정오만큼이나 뜨거웠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화산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예상했지만 그 이상으로 난관이었다. 아침부터 내리쬐기 시작한 햇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해졌다. 이런 폭염은 처음이라는 원정대원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폭우는 이제 거뜬한데 폭염은 새로운 난관이었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사방으로 펼쳐진 논과 밭은 더할 나위 없이 넓고 푸르렀지만 눈앞은 점점 깜깜해져 왔다.

그런데 각 팀에서 누가 일부러 시킨 것도 아닌데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각 팀마다 자신의 팀을 대표하는 노래 및 구호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가요, 동요, CM송 등 다양한 곡들을 개사해서 새로운 곡으로 완성했으며, 그 수는 무궁무진했다.

웬만한 가수의 콘서트를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한 레퍼토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이 분위기를 팀장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리드하는 것이었다. 선창을 하는 주인공은 매번 달랐고, 중간중간 추임새 역시 그러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가 내 대신 더 힘들 거라며 그들은 서로 먼저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노래와 구호 속에서 28km라는 오늘의 목표를 달성했다. 온몸에서 땀이 쏟아지고 더 이상 한 걸음조차 떼기 힘들 무렵이었다.

행군 종간중간 원정대원들과 대화하면서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내 자신이 부끄러운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동안 침낭에서 자다 보니 집에 가게 되면 이불도 침낭처럼 돌돌 말아 정리할 거라는 둥, 샴푸는 물소비가 많기 때문에 비누로 머리를 감아서 빗질이 안 된다는 둥, 샤워장 없이도 판초를 입고 샤워가 가능하다는 둥 원정대원들의 유머 가득한 에피소드를 들으면 웃음이 터지지만 그만큼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요즘 젊은이들은 편한 것만 추구하고 나약하다고들 하는데 그런 생각은 편견일 뿐이었다. 원정대원들은 현재 상황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해결하면서 당당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원정대원들은 모두 쉬운 길을 알고 있지만 그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자신들의 한발 한발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이 발걸음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함께 걷는 동료라고 해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대신 걸어가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배낭을 대신 메고, 손을 붙잡고, 어깨를 걸고 함께 걷고 또 걷는다.

원정대원들은 나를 이기고, 우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포항 호미곶에서 목포 유달 경기장까지 707km는 개인이 해냈지만 우리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을 대장정이 아니었을까? 2005년 대한민국 문화원정대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나서도 이 소중한 경험들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엔씨소프트 CR센터 권주희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