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중심에서 유통 중심으로, 이어 제조와 유통이 협업 체제로 나가는 현상은 시장 논리와 엔드유저를 고려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트렌드다.
동종 게임산업에서 온라인 게임 역시 초기 수백개의 개발사가 난립하던 상황이 현재는 퍼블리셔와 개발이라는 두 축으로 확연히 구분돼 있다. 최근 퍼블리싱 사업을 통해 힘을 키운 온라인 게임포털들이 직접 게임 개발에 나서고 이에 맞서 대형 개발사가 역으로 게임포털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지만 이는 기업 규모와 매출 면에서 최상위에 있는 몇몇 극소수 대기업에 해당되는 얘기다. 현재 대다수 중소 온라인 게임 개발사는 게임 출시 전 전문 퍼블리셔와 마케팅 제휴를 맺고 우회 서비스에 나서거나 아예 게임 기획단계부터 퍼블리셔를 끼고 개발을 시작하기도 한다.
게임 기획·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전 영역을 카바하려는 개발사는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 되지 않는 한 시장에서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온라인 게임 마케팅 비용이 개발비용을 초월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 수억에서 수십억, 많게는 100억 가까이 소요되는 게임 개발과 이에 버금가거나 상회하는 마케팅 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할 게임 개발사는 없다.
게임을 일반 상품으로 보고 개발사는 제조사, 퍼블리셔를 유통사에 비유하면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상품 유통 과정이 어떤게 변하게 될 지 보다 분명해진다.
해방 직후 국내 상품유통은 직접 제조해 직접 판매하는 제조유통 겸업이 주류였다. 이후 유통전문 기업으로 백화점이 생기면서 기존 재래시장과 백화점이라는 두 축으로 유통루트가 재편됐고, 90년대 들어 신유통이라 불리는 할인점과 TV홈쇼핑,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유통기업간 판촉 경쟁이 불붙었다.
여기서 백화점은 깔끔한 매장과 고급스런 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고, 할인점은 박리다매의 시스템으로, TV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은 편리한 안방쇼핑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시장을 개척하고 키웠다.
모바일 게임의 전문 퍼블리셔 역할은 이 같은 대형 유통기업과 다르지 않다. 상품을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갖추고 다양한 판촉활동을 통해 소비자를 끌어모은다. 단순화시키면 제조업체가 상품을 잘 만들어 내놓기만 하면 유통업체가 모든 것을 알아서 잘 팔아주는 구조다. 또 소비 트렌드를 가장 잘 아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필요한 상품 개발을 의뢰하기도 한다.
현재 모바일 게임산업에는 이러한 전문 유통기업이 없다. 그동안 전문 퍼블리셔의 역할을 이동통신사가 대신해왔다지만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높다. 이통사는 망사업자이자 통신서비스 업체이지 게임업체가 아니기에 모바일 게임 시장의 활성화와 시장 확대를 위한 의무감도 작을 뿐더러 투자 명분도 적다.
전문 퍼블리셔의 등장은 시장을 질적 양적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개발사는 게임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 질높은 게임을 개발하고, 퍼블리셔는 이를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연계시켜 시장을 키운다. 퍼블리셔는 능력있는 개발사에 지원과 공동마케팅으로 파트너십을 강화하지만 그렇지 못한 개발사는 도태돼 자연스런 구조조정 효과도 나타난다. 좁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에 개척 역시 퍼블리셔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기준 이하의 게임을 철저히 걸러내는 퍼블리셔로 인해 유저는 안심하고 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시장이 세분화돼 가격과 품질에서 폭넓은 선택이 가능해진다. 나아가 개발사의 역량 강화를 통해 인기 히트게임이 속속 등장하고 시장은 확대된다. 전문 퍼블리셔를 통해 기대되는 이 같은 시나리오는 게임 개발사와 유저 모두가 원하는 시장일 것이다. 해외 주요 퍼블리셔는 모바일게임 시장을 한마디로 ‘무안한 가능성을 가진 시장이자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핵심 콘텐츠’로 보고 있다.
시장 규모면에서 가장 큰 미국 모바일게임 시장을 살펴보자. 미국 시장은 이통사, 퍼블리셔, 개발사 체제로 극명하게 역할분담이 이뤄져 있다. 글루모바일, 잼닷, 엠포마, THQ 와이어리스, 게임로프트 등 주요 퍼블리셔가 대부분의 콘텐츠를 공급한다.
여기에 최근 EA라는 초대형 기업이 가세해 본격적인 모바일게임 및 유무선 연동 게임 시장이 열릴 것에 대비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향후 모바일 콘텐츠 사업과 시장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주요 퍼블리셔 통해서만 콘텐츠를 받고 있다.
미국 퍼블리셔간에는 서로 차별화된 특징을 갖추고 있다. 잼닷, 글루모바일, 엠포마, THQ 와이어리스는 영화, 만화, 스포츠 등의 라이센스 게임을 주로 취급하는 반면, 게임로프트(UBI 소프트), EA, 비방디스튜디오는 자사의 주요 PC 콘솔게임 타이틀을 모바일화하는 방식을 보인다.
하지만 본격적인 모바일게임 사업 진출에 앞서 전세계 이통 서비스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One Source - Multi Platform 체계를 위한 대형 개발·컨버팅 스튜디오를 일차적으로 갖추고 출발한다는 점은 같다.
중국은 현재까지 모바일게임 시장의 초기단계라 볼 수 있다. 지난해 중국 최대 규모인 차이나모바일의 경우 모바일게임 전체 매출은 6000만RMB(약 81억원) 정도로 미흡한 수준이다. 차이나모바일 가입자가 2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볼 때 시장 형성 자체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올들어 극명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올 1월의 매출은 1000만 RMB(약 13억 5000만원)로 전년 동월 대비 10배 이상이며, 매월 사용자가 백만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차이나모바일은 올해 모바일게임 매출을 8억RMB(약 1100억원)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 주요 이통사의 모바일게임 매출을 넘는 수치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내 모바일게임 개발사는 최소 400개에서 최대 700여개까지 얘기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중 60~70%가 직원 20명 이내의 소규모로 게임 개발부터 이통사 검수, 마케팅, 해외 수출 등 다양한 분야를 직접 진행한다.
세계 시장은 점점 벽이 허물어져가고 있는데 국내 개발사들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경쟁 요소인 창작력, 게임기획력의 발전은 뒤로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먹고 살기 위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세계 최고의 온라인게임을 접해왔던 국내 게임 유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국내 시장은 점점 성장 동력이 약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해외 시장 진출도 그리 만만치 않게 어렵다. 대작게임이나 스포츠게임을 선호하는 미국과 유럽으로 가기에는 개발장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벽이 높고 일본이나 중국으로의 진출은 초기 과감한 투자를 통해 현지 플랫폼과 단말기 특성에 맞는 게임을 개발하고 불법 도용에 맞설 수 있는 대형· 차별화된 게임이 많지 않다.
하지만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게임개발사의 창의력과 퍼블리셔의 비즈니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투자 능력이 합쳐지면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전문 퍼블리셔 체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사항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개발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게임기획 및 개발에 몰두하고, 퍼블리셔는 국내 이통사 및 전세계 배급사와의 체계적인 비즈니스 경쟁을 통해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의 본질적인 발전을 이뤄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당위성을 고민하고 의심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