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영섭 ARM코리아 사장(5)

ARM코리아 창립식 날 ARM 본사 임원 및 건한 관계자들과 함께. 왼쪽 첫번째가 필자.
ARM코리아 창립식 날 ARM 본사 임원 및 건한 관계자들과 함께. 왼쪽 첫번째가 필자.

(5)ARM과의 협상,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의 눈부신 성장

 마침내 나는 새로운 길을 택하기로 했고 97년4월 건한을 떠났다. 그리고 2개월 후인 97년 6월 ARM코리아를 설립했다.

 ARM과의 협상 당시 나는 3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가 나와 건한도 지분을 갖는 합작회사 형태로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둘째는 내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전체 시장을 맡겠다는 것이며 셋째가 내가 뽑은 직원에 대한 인사권과 본사의 스톡옵션을 합작회사 설립의 대가로 부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ARM 측에서 요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지분이 있어야 더욱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로 그들과 협상했다. IBM 재직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기업은 논리적으로 설득만 시킨다면 협상을 충분히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비즈니스 협상 중 가장 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외국 IT회사가 국내의 법인이 아닌 평범한 한 개인과 합작회사를 설립한 경우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립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사태가 왔다. 영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시련이 닥친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ARM본사에서 인원구조조정에 대한 압력이 내려왔다. 나는 그 당시 부즈 알렌 보고서를 인용해 그들을 설득했다.

 부즈 알렌 보고서는 한국이 IMF 체제에 들어간 원인 중의 하나로 앞으로는 선진국의 기술장벽에 막혀 있고 뒤로는 중국 등 후발국에 바짝 쫓기는 ‘넛 크랙커’(nut-cracker) 상황에서 한국이 지나치게 외향 팽창에 치중한 반면 기술개발과 인재육성에 인색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짧게 볼 것이냐, 아니면 길게 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직원들이 공부하고 재충전할 시간을 갖는다면 중장기적으로 회사는 투자하는 몇 배 이상을 보답 받을 것입니다.”

 ARM은 나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때 뽑은 직원들은 지금까지도 ARM코리아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제 ARM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핸드폰과 전세계 핸드폰의 85% 이상이 ARM기술을 이용해 만든 중앙처리장치(CPU)를 채택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작년에는 13억개 이상의 ARM 칩이 판매됨으로써 ‘디지털 세상을 설계하는 회사’(The Architecture For The Digital World)라는 회사의 비전을 현실화하고 있다.

 97년 합작할 당시 70여 명이던 전체 ARM 직원 수가 이제는 1200여 명으로 늘었다. 매출액도 4억달러, 영업이익률 33%에 달할 정도의 뛰어난 재무구조 덕에 증권시장에서의 시가총액도 28억달러에 이른다.

 ARM코리아 성장도 눈부시다. 설립 첫해 3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까지 거의 매년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거듭했고 현지법인으로서 창출한 이익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 100%를 국내에서 내고 있다. 지난 2001년에 대만, 2003년도에는 중국 상하이, 2004년에는 베이징에 현지법인을 직접 설립하는 등 내가 맡고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아태지역 매출액이 ARM사 전체 매출액의 10% 이상 차지하는 등 타지역에 비해 월등한 영업 신장률로 모두에게 인정받게 됐다. 아울러 중국, 대만과 같은 지역을 관할하면서 유형, 무형으로 배우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sam.kim@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