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사령탑(CEO)이 젊고 강해지고 있다. 이전 CEO의 무기가 ‘관록’과 ‘명성’이었다면 이제는 ‘패기’와 ‘정열’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평균 연령대도 낮아지고 기업 자체도 투명해지는 추세다.
외국인이 대표를 맡는 사례가 점차 줄고, 외부 영입 인사 대신 내부 승진 인사가 크게 느는 등 토종 기업에 버금가는 인사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적’이 CEO의 최우선 평가 잣대로 등장하면서 평균 근속 연수도 짧아지고 국내 다국적 기업의 매출 규모가 정체 상태에 머물면서 ‘코리아 법인’은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다.
◇‘젊어지는’ 글로벌 사령탑=CEO 연령대가 낮아지는 추세는 글로벌 법인도 마찬가지다. 평균 연령이 점차 떨어져 40대 CEO가 ‘주역’으로 떠올랐다. 올해 국내 IT기반 글로벌 기업 사령탑은 대부분 40대 위주로 ‘물갈이’가 이뤄졌다.
지난 5월부터 한국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유재성 사장. LG전자에서 기업 생활을 시작해 지난 94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한 그는 60년생으로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46세다. 올 1월 한국IBM을 맡기 시작한 이휘성 사장도 61년생이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인 인텔의 국내 법인인 인텔코리아 이희성 사장도 62년생으로 앞선 두 사람과 함께 ‘40대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다. 이 사장은 지난 4월에 인텔코리아 대표로 발탁됐다.
10년 넘게 한국실리콘그래픽스를 이끌었던 심풍식 전임 사장에 이어 지난달 새로 대표를 맡은 심종배 사장도 43세에 불과하다. 세계 PC 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델의 국내 법인 델인터내셔널을 이끄는 김진군 사장은 글로벌 법인 CEO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67년생이다.
◇내부 승진자 ‘두각’=외부에서 영입하는 데서 벗어나 내부 인사를 발탁하는 경향도 뚜렷해 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로컬화와 맞물려 국내 인사에 대표를 맡기는 경향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74년 국내에 진출한 한국후지쯔는 93년 이경호 사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일본 현지인이 맡았으나 지금은 내부 인사가 줄곧 대표를 맡아 오고 있다. 이 사장에 이어 안경수 사장, 올해부터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형규와 김병원씨 모두 후지쯔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 88년 국내에 법인을 설립한 이후 외국인과 국내 인사가 번갈아 대표를 맡았던 한국썬도 2002년 이후 유원식 사장이 부임하면서 본사에서도 ‘유원식 체제’를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2004년부터 한국유니시스를 맡은 강세호 사장도 존 피시번 전임 사장에 못지않은 조직 관리, 실적과 이미지 개선에 성공하면서 유니시스 전체를 통틀어 대표 로컬 법인장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
이 밖에 올해 새로 대표를 맡은 이휘성 한국IBM 사장,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 유재성 한국MS 사장 모두 해당 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으로 내부에서 발탁됐다.
◇코리아 리더십 ‘발등의 불’=젊은 CEO가 발탁되면서 기업의 활력소를 만들고 투명해지는 반면 재임 기간은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국내 IT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90∼2000년대 초반까지 평균 재임 기간이 5년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2∼3년에 한 번씩 대표가 바뀌고 있다. 10년 넘게 근속한 CEO는 최준근 한국HP 사장이 유일할 정도다.
본사에서도 CEO의 평가 잣대가 철저하게 ‘실적’ 위주로 변하고 인사·조직 운영·마케팅·사업 계획 등 모든 부문의 ‘재량권’도 갈수록 줄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국내 법인장의 위상도 위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전처럼 시장과 매출 비중에 따라 국내 법인의 위상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모바일 기술·전자태그(RFID)·유비쿼터스 등 ‘코리아’만이 가질 수 있는 리더십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