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용서받지 못한 자

군대라는 조직은 특수하다. 상명하달의 엄격한 질서 아래서 전쟁이라는 유사시의 특수상황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군대는 필요 없는 집단이다. 군대는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 영점 몇 퍼센트의 소수점 이하인 특수상황을 대비하며, 극한적 신체훈련과 다양한 전술훈련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진 가장 뛰어난 군대 소재의 영화다.

한국 전쟁 이후 군대 소재의 영화들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 류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해 상처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군대나 전쟁을 소재로 한 좋은 영화들, 가령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쟈켓’이나 테렌스 멜릭 감독의 ‘씬 레드라인’ 혹은,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처럼, 소재 자체의 현상적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극한 상황이 초래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문제점을 탐구해 들어간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를 소재로 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집단 조직이 왜소한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적 상황과 그것이 빚어내는 무서운 비극을 냉정하게 응시하고 있다. 이 영화의 섬세한 떨림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신인 윤종빈 감독은, 알려져 있다시피 대학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기획되었던 이 영화의 완성을 위해 위장된 시나리오로 군 당국의 허가를 받는 편법을 사용했지만, 영화는 영화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주제를 응시하는 놀라운 집중력과 진솔함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수많은 군대 무용담 중에서도 가장 생략되는 부분, 즉 극한상황을 대비하는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이 어떻게 왜소한 한 개인의 내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가를 다루고 있다. 이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어둠과 마주해야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논산 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던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는 똑같은 신분의 훈련병들이 동료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대 배치를 받고 나면, 그때부터 진짜 군대생활이 시작된다. 장교와 하사관, 일반 사병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특히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는 고참병과 신입병 사이의 갈등은, 군대생활의 핵심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제대를 얼마 앞둔 고참병 유태정 병장(하정우 분) 밑에 막 자대배치를 받은 신입병 이승영 이병(서장원 분)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다. 고참들은 깍듯이 하늘처럼 모시고 후배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모습으로 모범적인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유 병장은, 매사에 반항적이며 고참들에게 항명하는 동창생 이 이병 때문에 고통스러운 말년을 맞이한다.

자신은 고참이 되어서 절대 후배들을 괴롭히지 않고 잘해주겠다고, 군대 내부의 비합리적 요소들을 척결하고 이상적 집단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던 이 이병도 동창인 유병장이 제대하고 보호막이 사라지자 급변한 현실 속에서 살길을 찾는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혐오하던 고참들의 비위를 맞추며 수직적 위계질서 속의, 거대 집단 속의 튀지 않는 부속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후임병으로 허지훈 이병(윤종빈 분)이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치 자신의 신입병 시절을 닮은 허 이병 때문에 이승연 상병은 괴롭기만 하다.

휴가를 나온 이 상병이 자신의 중학교 동창이자 군대시절 고참인 유태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하룻밤의 사연 속에 군대 시절 이야기를 응축해 넣은 ‘용서받지 못한 자’는 비극으로 끝난다. 후임병의 자살, 거기에 충격 받은 선임병의 자살이 이어지면서 군대라는 거대 조직이 왜소한 개인들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적 상황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그것이 단지 군대 내의 특수한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미덕이 있다.

언제나 조직은 다치지 않고 왜소한 개인만 피를 흘린다. 윤종빈 감독은, 군대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집단개인의 대립 속에서 피 흘리고 상처 받는 사람들의 내면에 섬세하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체의 상업적 타협점을 거부한다. 이것이 작지만 위대한 이 영화에 우리가 경배의 잔을 바치는 이유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