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황우석 교수사태와 익명의 힘](https://img.etnews.com/photonews/0512/051227113243b.jpg)
온 나라가 황우석 교수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진실이 어디에 있든지 지금 우리가 겪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점차 투명해지고 내부 역량을 축적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터넷에서의 사이버 여론이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하나는 PD수첩의 보도 직후 PD수첩 제작진을 대상으로 나타난 이른바 ‘사이버 폭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에 접근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인터넷을 통해 파급되고 힘을 얻어 갔던 과정이다.
PD수첩 제작진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폭력은 이전의 다른 사이버 폭력과 마찬가지로 PD수첩 제작진의 개인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언어 폭력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을 띠었다. 그것은 익명·실명을 막론하고 모든 인터넷 공간을 통해 확산됐고, 해당 개인에 대한 폭력적인 언어의 ‘폭격’의 형태로 일어났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보호돼야 할 개인정보가 제어장치 없이 공개되고 그에 대한 언어적 폭력이 난무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 게시판이 익명이었는지 실명이었는지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초기의 뜨거운 논의가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문제 제기의 시작점은 BRIC에 익명으로 제기한 과학자들의 글이었고, 이 글들이 DC인사이드 등을 통해서 익명에 의한 보호를 받으며 확산되면서 일반인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과학적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기존의 정치 권력뿐 아니라 황우석 교수도 거의 신격화에 가까운 숭배를 통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익명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개인의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PD수첩 사태를 통해서 본 일반 사이버 여론의 폭력성을 고려하면 더욱 더 당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진실을 실명으로 밝히는 것은 PD수첩 제작진 못지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과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사이버 세상에서 최소한의 익명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최소한의 익명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와 비슷하게 기존의 권력에 (그것이 정치적인 권력이든 다른 형태의 절대적인 권력이든) 과감하게 도전하는 진실의 목소리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사이버 폭력을 보더라도 그 게시판이 익명이었는지 실명이었는지는 그 폭력을 막는 데 실질적인 영향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해당 개인 정보가 너무 쉽게 노출되고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그 사이버 폭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아울러 이 모든 과정에서 기존의 권력에 도전하면서도 궁극적인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익명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경험했다.
정부에서는 ‘본인 확인 의무화’를 ‘일정 규모 이상의 포털’에만 적용하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느 서비스든지 ‘일정 규모’ 이상의 성장을 목표로 시작하는만큼 이 요건은 실질적으로 모든 서비스에 적용될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개인 공간 이외에는 적절한 익명의 공간이 사라질 것이다. 이는 앞으로 제2의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그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잘못된 처방에서 시작해 잘못된 정책을 만들어 낸 결과가 된 정부의 ‘본인 확인 의무제’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허진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hur@kinterne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