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SI시장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https://img.etnews.com/photonews/0512/051228031908b.jpg)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세일즈포스닷컴 시티 투어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세일즈포스닷컴은 지난 2004년 6월 상장돼 1년 만에 기업가치 4조원에 이르렀고 매년 8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세계 1위 온라인 CRM 서비스 업체다. 이 세미나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사장의 ‘업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e베이가 되자(An eBay for Business Software)’라는 말이었다. 이는 IT시장에서 거품을 빼고 경제적인 가격에 고품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자는 뜻이며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ASP 방식 등을 이용해 유통단계와 유통마진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특히 이 말은 그동안 내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국내 IT시장에도 이마트가 필요하다’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느낌이 남달랐다.
내가 유통단계와 유통마진에 주목하는 것은 18조원의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3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SI시장의 문제점 때문이다. 현재 SI업체들은 특별한 부가가치 창출 없이 유통마진으로 최종 고객에게 제공되는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가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 놨다.
10여년 전 SI업체인 LG CNS에서 근무하던 나는 마케팅 전략개발 차원에서 당시 SI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300대 기업 중 SI업체를 보유하지 않은 기업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많은 SI 사업자가 모두 사라지고 경쟁력 있는 10여개의 SI 사업자로 시장이 재편돼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사업자가 국내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보고했다.
실제 그 이후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는 IMF 위기라는 천혜(?)의 구조조정 기회가 있었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은 자사의 SI업체를 처분하기 시작했고 IT 아웃소싱을 검토하는 등 왜곡된 소프트웨어 시장이 긍정적으로 구조조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과정이 2000년 인터넷 버블과 IMF 위기 극복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등으로 금세 사라지고 SI업체는 또다시 늘어나고 말았다.
여기서 나는 국내 SI업체들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서 경쟁력 있는 업체들 중심으로 재편되고 세계적인 선진 업체가 출현하기를 바라면서 두 가지 고려할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존 서비스 방식을 유지한 상태에서 업무혁신 등 소극적인 변화만을 통해 소폭의 비용을 절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SI업체들은 세일즈포스닷컴과 같은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통해서 동일한 또는 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해야 한다.
둘째는 현재 SI업체가 소프트웨어나 시스템 공급을 일회성 개발 사업으로 인식하고 유지보수는 고객이 적정한 비용을 지급할 때만 제공한다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제공되는 시스템이 전 수명주기에 안정적이고 만족스럽게 운용될 수 있도록 책임지고 지원하는 능동적인 서비스 사업자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활성화해 국산 소프트웨어의 진흥을 모색하겠다는 소프트웨어 부문 진흥책을 발표했다. 또 이를 통해 정부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시장 규모를 3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부의 공언대로 공개 소프트웨어 활성화를 통해 소프트웨어 시장은 30조원 규모로 성장할 수도 있고 그에 대한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기존 SI 사업자들이 주도하는 비효율적인 소프트웨어 유통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30조원 규모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유통마진 성격의 가치 없는 비용으로 10조원 이상이 낭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정책 담당자들은 고려해야 한다.
◇오병기 넥서브 사장 brian@nexer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