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포럼]한국e스포츠, 갈림길에 서다

[문화콘텐츠포럼]한국e스포츠, 갈림길에 서다

2005년은 e스포츠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와 관심이 유독 뜨거웠던 해였다.

 연간 4조원의 국내 시장 규모를 넘어선 게임이 이미 문화산업의 주축으로 당당히 자리잡은 가운데 게임이 낳은 파생 산업인 e스포츠는 올해만 395억원의 시장 규모를 형성했고, 2010년에는 12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e스포츠가 국내에서만 화려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유수 기업이 후원하는 방송 리그를 통해 지난 5년간 유독 국내에서 성장해온 e스포츠는 이제 우리나라를 벗어나 해외에서도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고 있다.

 e스포츠 발전의 초창기였던 2000년에는 우리나라 주도로 창설된 월드사이버게임즈(WCG)가 유일했던 세계 대회였지만, 2003년 이후 점차 세계 대회를 주창하는 여러 대회가 미국·프랑스 등에서 생겨났다.

 이렇게 전체적인 판이 커졌을 뿐 아니라 이러한 대회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과 참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WCG에는 전 세계 67개국, 7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17개국에서 참가했던 2000년 챌린지 대회와 비교하면 5년 만에 무려 4배 이상 성장한 규모다.

 지난 2000년부터 일찌감치 WCG를 통해 e스포츠 문화를 받아들이고 99번째 스포츠 종목으로 지정하는 등 e스포츠에서만큼은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온 중국은 얼마 전 정부 기관의 주도로 상하이에서 ‘차이나 인터넷 게이밍’이라는 국내 대회를 대규모로 개최했다. 유럽에서는 e스포츠 전용 케이블 채널이 생기고, 미국의 공중파 방송 CBS는 e스포츠를 소재로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e스포츠의 확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에는 네덜란드에서도 우리나라의 e스포츠협회와 같은 기관이 조직되는 등 각국의 e스포츠도 우리 e스포츠와 같이 점차 조직화돼 가고 있다.

 이러한 e스포츠의 세계화 현상은 지난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WCG2005 현장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미국·독일 등 IT 선진국들의 꾸준한 선전과 더불어 브라질·카자흐스탄 등 IT 개발 도상국가들의 활약이 바로 그것이다. 또 올해 싱가포르 WCG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층에서 5만5000명의 인파가 모여들어 게임과 e스포츠라는 콘텐츠가 점차 대중화돼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WCG가 지난 5년간 e스포츠의 세계화에 기여해 온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e스포츠 문화를 흡수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각국의 움직임을 보면서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 입지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종주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e스포츠의 종주국이 아닌 발상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세계 시장에서 진정한 e스포츠의 종주국이기 위해서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만한 선진적인 산업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 뿐 아니라 세계 e스포츠 트렌드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e스포츠로 사랑받는 해외 국가들에 비해 우리는 지나치게 특정 전략게임 위주로 e스포츠가 발달해 있어 세계적인 흐름으로부터 비켜가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e스포츠의 산업성을 파악한 우리가 무한한 기회가 잠재돼 있는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부터 전략적으로 다양한 게임을 e스포츠로 진흥시키고 역량있는 게이머들을 양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국산 게임을 e스포츠 종목으로 활성화하는 것도 해외 게이머들의 코드를 고려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세계화’가 전제돼야 한다.

 위기를 느끼고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자기 만족적인 구호가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게임의 세계에서도,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영원한 강자는 없으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순간의 방심으로 그 입지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선두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것은 1위의 몫이다.

◇정흥섭 인터내셔널사이버마케팅 사장 hjeong@icm2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