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위치한 세계적인 3D 그래픽 솔루션 전문 업체 멘탈이미지.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영화 매트릭스의 포스터가 문화기술(CT) 공동조사단을 맞이한다. 작지만 강한 회사, 핵심기술로 승부를 거는 회사 멘탈이미지는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최첨단 SF 영화 매트릭스를 앞세워 첫 번째 인사를 대신했다. 멘탈이미지를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랴.
“우리 회사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죠.” 흉내내기 힘들 정도로 멋들어진 워쇼스키 형제의 사인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루드비히 폰 라이헤 대표가 한글로 된 자신의 명함을 건네면서 인사를 했다. 지난해 4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방문했을 때 한글 명함을 만들었단다.
멘탈이미지는 렌더링(rendering) 전문 업체다. 렌더링은 ‘평면의 그림에 그림자나 농도의 변화 등을 통해 입체감을 주는 컴퓨터그래픽의 핵심과정’으로 SF 영화제작에 필수적인 기술. 지난 1993년 픽사스튜디오의 ‘렌더맨(render man)’ 솔루션을 활용한 주라기공원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너무나 생생한 공룡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하지만 매트릭스 시리즈·스타워즈 에피소드2·헐크·터미네이터3·알렉산더 등 너무나도 유명한 최근의 영화들은 모두 멘탈이미지의 렌더링 솔루션 ‘멘탈레이(mental ray)’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일렉트로닉아츠·닌텐도·세가·소니 등 유명 게임업체는 물론이고 BMW·혼다·폴크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들도 멘탈이미지의 고객이다. ‘렌더맨’이 장악하던 시장을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온 비결이 뭘까.
“미래를 봤기 때문입니다.” 라이헤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롤프 헤르켄 멘탈이미지 CEO 겸 CTO의 말이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기술을 개발한 게 아니라 ‘미래에 나올 영상 콘텐츠를 구현하는 데는 어떤 기술들이 필요할까’라는 나름의 비전을 수립하고 기술개발을 선도했다는 설명이다.
“‘멘탈레이’는 ‘렌더맨’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빛의 사용에 중점을 뒀습니다. 이 결과 ‘매트릭스’에서 한줄기 빔이 아닌 액티브 빔 효과를 사용해 반사되는 표면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영화계의 시선을 한번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죠. 이후는 탄탄대로였습니다.” ‘렌더맨’이 안주하는 동안 ‘멘탈레이’는 미래를 보고 끊임없이 달렸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독일인들의 철저한 준비성과 기술적인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처럼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멘탈이미지의 강점은 차기 주력사업이 될 ‘리얼리티 서버’ 프로젝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2002년 첫번째 베타버전이 나올 정도로 최신 기술인 ‘리얼리티 서버’는 대용량 렌더링 작업을 하지 못하는 웹 공간에서도 3D 입체공간을 빠르고 쉽게 구현해준다. 일반 개인이 보유한 PC에서도 시스템 성능의 제약 없이 고차원적인 그래픽을 보여주는 게 주목적이다. 미국 남부의 항만을 모델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을 시연해보니 인터넷 환경에서도 빠르게 3D 화면이 구현됐고 이용자가 마우스 클릭만으로도 화면의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어디에 쓰일까.
“당장 대형 할인점을 웹상에서 실시간 3D로 보여줌으로써 고객들은 자신의 집에서 편하게 쇼핑 순서를 미리 그려볼 수 있고 공항에 적용되면 직원들의 동선을 훈련하는 데 활용됩니다. 원격의료에도 이용되고 웹 기반 온라인 3D 게임 제작비를 줄여줍니다.” 개발 담당자의 말이다. 이 밖에도 박물관 가상투어, 자동차 가상판매 등 적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멘탈이미지는 이 기술을 지난 1999년에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자금을 구할 때 모두 ‘이게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기술개발 과정에서 회사가 많이 어려워지면서 직원수를 줄이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완전 정상화돼서 2003년에는 대규모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미리 한 발 앞서나갔기 때문에 현재 관련 기술에 경쟁자는 없습니다.” 라이헤 대표는 “미래를 꿰뚫어보고 스스로 비전을 수립한 게 멘탈이미지가 영상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자신했다.
멘탈이미지는 최근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그래픽을 한번만 만들어놓으면 영화나 X박스용 게임,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등 이기종 간에 서로 변환할 필요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도 개발중이다. 라이헤 대표는 “이 기술이 완성되면 게임개발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관련 시장 성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기술이 디지털콘텐츠와 만나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시너지가 발휘된다.
최첨단을 달리는 기술업체의 이름에 ‘멘탈(정신의)’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가 뭘까.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표현해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원 솔루션을 선도해서 개발해온 우리 기술진의 좌우명이기도 하죠.” 헤르켄 CEO의 설명에서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열어나가려는 멘탈이미지의 확실한 사업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기술을 예술로 승화하는 ZKM
독일 라인강변의 작은 도시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예술과 미디어기술센터(ZKM)’는 기술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키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미디어미술연구소·멀티미디어 연구실·음악 및 음향학 연구소·미디어미술관 등으로 구성된 ZKM에서는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예술적 상상을 기술적으로 실험하고 다양한 첨단예술을 발표한다.
ZKM을 방문했을 때 처음 가진 느낌은 ‘과연 콘텐츠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었다. 미디어미술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전시물만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실제 식물에 손을 대면 화면 속 식물이 자라나거나 빛으로 가득한 통로를 걷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ZKM 운영을 총괄하는 크리스티앙 리델 씨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2003년 ‘미래 영화’라는 제목의 대규모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멀티스크린과 돔 프로젝션, 인터랙티브 서사 등 미래영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처음으로 종합한 행사였죠. 이 행사를 계기로 디지털기술과 영화가 만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당장은 생소해 보이는 ZKM의 다양한 시도가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며 결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멀티미디어연구실에서 개발중인 360도 입체영상시스템은 당장 실생활에 접목돼도 좋을만한 기술이었다. 도로를 주행하는 시연에서는 마치 자신이 차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며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시연 역시 신기했다. 이 같은 기술은 당장 자동차 운전 교육 콘텐츠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또 음악 및 음향학 연구소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의 다양한 각도를 자동으로 조절해 최적의 음향을 만드는 실험이 진행되고 모든 연주를 컴퓨터가 관리하는 앨범도 제작됐다.
리델 씨는 “기술을 실제 콘텐츠 산업에 접목하는 게 ZKM의 한결같은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