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곡동에 있는 ‘IBM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소’. IBM은 본사 와튼 연구소를 비롯한 전세계에 수십 여 개의 연구개발센터를 두고 있지만 유비쿼터스 기술과 관련해서는 이 곳이 유일하다. 여기에서는 텔레매틱스·전자태그 (RFID)·모바일용 소프트웨어의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며 이 곳에서 검증받은 기술은 IBM 글로벌 조직을 통해 전세계에 퍼지게 된다. 유비쿼터스 분야 만큼은 한국IBM이 IBM 본사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IT기업의 새로운 자리매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도·중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일본·유럽 등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매출을 위한 영업 조직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마디로 기술·시장·비즈니스 각 분야에서 ‘코리아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IBM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남정태 소장은 “탄탄한 IT 인프라를 갖춘 국내는 아직도 글로벌 기업에게 매력적인 지역”이라며 “유비쿼터스와 같은 분야를 다른 나라에 앞서 선도적으로 진행해 차별화를 이뤄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국내는 선진국 어느 나라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IT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인터넷 사용인구 면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이동통신·디지털TV·홈네트워크 분야는 여전히 전세계가 인정하는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 만큼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시험해 볼 최적의 조건을 가진 지역도 없다. 어느 나라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경쟁력 있는 인력도 가지고 있다. 이 덕분에 이미 우리는 전세계 글로벌 IT기업의 ‘테스트 마켓’으로 꼽혀 왔다. IT제품은 ‘코리아’에서 통하면 ‘월드 와이드’에서 성공한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실험실’ 수준의 시험 무대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테스트 마켓은 조건만 맞으면 어느 지역으로도 옮길 수 있다. 주변 상황은 우리 만의 ‘히든 카드’가 없으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조차도 얻기 힘들게 변하고 있다.
박형규 한국후지쯔 대표는 “세계의 수 많은 글로벌 지역 법인 중에서 국내 법인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앞선 기술과 인력을 접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IT 분야에 앞섰다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해 컨설팅·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를 종합한 사업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기업에도 기술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인력도 부족하고 본사의 지원을 얻기도 만만치 않다. 당장 실적에 쫓기는 상황에서 여유도 없다. 하지만 변화된 환경에서 독자적인 리더십을 갖지 않고서는 탄탄한 다국적 IT기업의 ‘브랜드 파워’도 보장 받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