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원장 고현진)은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재팬(SCEJ)과 손잡고 PS3용 온라인게임개발을 위한 제작지원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으나 출발부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논란이 일고 있다.
‘타 지원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단 한번으로 세계적인 스튜디오가 될 수 있는 기회’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제안서를 제출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하고 시간이 짧으며 리스크가 너무 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KIPA와 SCEJ 측은 “지난 2년 동안 준비한 유례가 없는 사업”이라며 “악용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 일 뿐 열의가 있는 개발사에겐 기회”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한 호텔에서 KIPA와 SCEJ는 국내 중소개발업체를 대상으로 ‘WA! 온라인게임’ 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내용은 PS3용 온라인게임개발을 위한 제작지원사업으로 채택된 작품에 대해서는 개발비 전액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전세계 퍼블리싱까지 맡아 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소니 등 일본개발업체들의 관행에서 비춰볼 때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많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실제로 발표회장은 구름처럼 모여든 개발자와 관계자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는 등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그러나 설명회가 진행되면서 개발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질의응답 시간에 이르자 반수 이상이 자리를 뜨고 말았다.
# PS3 온라인 정보 공개가 관건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개발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가졌던 내용은 바로 PS3 정보 공개였다. 자리에 참석했던 P사의 한 개발자는 “제안서를 4월 30일까지 내야하는 짧은 기간도 문제지만 PS3에 대한 어떠한 정보의 공유없이 오로지 개발자의 상상만으로 PS3용 온라인게임개발에 대한 기획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X박스360이라면 어차피 윈도우 기반이기 때문에 예상 가능한 범위가 있지만 PS3는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흥분했다.
SCE WWS 재팬 스튜디오 토미카즈 키리타 부사장은 “PS3에 대한 정보는 공개할 수 없고 조만간 공식 발표가 예정돼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만 말했다. 또 ‘PS3 성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알려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토미카즈 부사장은 “전세계 공통으로 해당되는 것으로 아무런 내용도 알려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또 개발 도중 중도하차되면 환수가 가능하다는 내용도 개발자들의 머리를 흔들게 만들었다. 이번 사업은 개발사가 제안서를 제출하면 KIPA가 선정해 프로토타입까지의 개발비를 전액 지원하며, 프로토타입으로 SCEJ는 대중성, 작품성 등을 따져 본 계약 대상 작품을 추린다.
선택된 프로토타입은 다시 완료될 때까지 개발비 전액을 SCEJ로부터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지만 완성도나 대중성이 낮으면 SCEJ가 계약을 거부할 수 있고, 개발사는 KIPA에서 받은 지원금을 100%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 위해 SCEJ가 개발툴킷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정식 게임으로 발매되지 않아도 게임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SCEJ가 갖도록 돼 있다.
# 은행 대출과 다를 바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프로토타입까지 만들고 SCEJ의 간택을 받지 못한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이라며 “마음 졸이며 개발비를 받기 보다 차라리 은행에서 대출받아 게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진정으로 완성도에 문제가 있는 등의 이유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도중 탈락시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즉, SCEJ가 국내 개발사들의 아이디어와 온라인게임에 대한 노하우를 수집한 뒤 트집을 잡아 일부러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게임에 대한 시각차이가 커 KIPA가 인정한 부분을 SCEJ가 받아 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개발자들이 부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업체들의 생리와 관행을 이해하고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기회라는 의견도 다수다.
S사의 한 개발자는 “만약 SCEJ와 순조롭게 일이 진행돼 정식 발매만 된다면 단숨에 스튜디오 이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 수 있다”며 “지금까지 이런 기회조차 없었던 과거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KIPA와 SCEJ가 모든 책임과 위험부담을 감수하라는 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원래 게임개발이 쉽지 않은 분야고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투자가 어려운 분야다. 지원사업은 개발사들이 돈만 받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한 장치는 다 마련한다”며 “업체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세계적인 스튜디오 ‘시간문제’
한 콘솔게임업체 관계자는 “PS3는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로 그룹 차원에서 올인할 것이 뻔한 제품이고 온라인기능을 대폭 강화해 온라인게임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이번 사업은 PS3에 무임승차해 초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기회로 현명한 개발사라면 분명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CEJ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게임업체들은 폐쇄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최근에는 영어권의 유명 개발사나 퍼블리셔와 협력 관계를 맺는 등 다소 오픈된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PS3용 온라인게임 무상 지원 사업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시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SCEJ 측도 지금까지와 달리 모험을 시도하는 것이다. 단순히 한국산 온라인게임이 필요한 것이면 일부 메이저급 업체와 비밀리에 공동 개발을 진행하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흥행성이 검증돼 있고 개발력과 노하우를 갖춘 업체라면 그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소업체라면 조건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KIPA 측은 “중소업체를 지원하는 국책 사업이고 수익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악용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고 프로토타입이 완료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SCEJ가 마음대로 평가를 내리지 못하도록 밝힐 수 없는 사항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SCEJ의 한 관계자는 “이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의와 열정, 의지를 가지고 있는 가”라며 “게임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게임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PS3용 온라인게임은 무척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기획서 작성을 위한 가이드라인만큼은 알려 줘야 한다며 그러나 다소 불합리한 조항이 있더라도 피말리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국내 온라인게임시장에 고만고만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보다 얻는 바가 훨씬 클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