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한국 IT산업의 현실](https://img.etnews.com/photonews/0606/060608014815b.jpg)
다음은 모 시의회 홈페이지 전면 개편과 관련한 용역 입찰공고 내용이다. △현재 운영중인 홈페이지 전체 디자인 개편 △한글·외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인터넷방송·어린이 홈페이지 등 재구축 △정보소외계층(시각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실시간 음성서비스 제공 △설문조사 시스템 구축을 통한 시민의 다양한 의견 수렴 기능 강화 △시민입력 게시판의 본인 실명확인 기능으로 건전한 사이버 문화 정착 유도 △부서 및 담당자별 홈페이지 관리가 용이한 관리자 페이지 제작 △의회 청사 및 의회 홍보관 등 최신기술을 적용한 의회 사이버견학 재구축 △페이지별 서비스 만족도 조사 및 의견제시 기능 제공 △음성합성엔진(TTS) 업그레이드 및 음성합성관리솔루션 도입·설치 등이다.
과연 이 시의회 홈페이지 입찰 공고 사업예산은 얼마일까.
하루에도 수십 건의 IT 관련 용역이나 구매 입찰공고가 정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대학 등에서 쏟아져 나오고, 수백개 중소 IT기업이 입찰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선정이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입찰에라도 참가하기 위해 기업은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제안서를 작성하고, 이를 심사위원 수만큼(10부 정도) 출력해 책으로 묶고 또 수십 페이지짜리 요약본도 따로 만들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서류를 상자 분량으로 제출해야 한다. 나 역시 제출서류가 너무 많아 조달청까지 차량에 싣고 간 적이 있다.
그렇게까지 인력·시간·자금을 투입해서 만든 제안서가 심사위원에게 끝까지 읽힌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한 회사도 아니고 입찰참가 회사 수만큼 많은 제안서를 어떻게 모두 읽을 수 있겠는가. 가령 5개 회사가 참가했다면 보통 업체당 분량이 300페이지 정도 되니까 총 읽어야 할 양이 1500페이지가 되는데 그것도 5개 회사의 제안을 비교·분석하며 읽어야 한다. 결국 제대로 읽히지도 않을 제안서를 위해 기업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IT기업이 용역이든 납품이든 그 대가로 받게 될 ‘사업예산’에 이르면 시쳇말로 욕이 나온다. 사업예산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IT분야의 사업예산도 기본적으로 담당자가 업계 정보를 취합해 예상금액을 결정하고 내부결재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계약 주무부서에서는 자체 예산절감방안 등을 고려해 10% 정도를 삭감한다.
이렇게 삭감된 사업예산은 조달청으로 넘겨져 대학 연구소 등의 기관에 의해 다시 한번 가격평가를 받게 되고, 그 결과 거의 예외 없이 5∼10%를 또 절감당하는 비운을 맞이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찰에서 선정된 업체도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상처뿐인 영광’, 상투적이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IT 비전문가들이 기계적으로, 행정편의적으로 반복하는 이런 불합리한 제도부터 하나씩 고쳐 나가자는 것이다.
중소 IT기업도 온갖 혁신을 이뤄내며 원가절감이나 신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SI프로젝트를 수행한 기업치고 ‘돈 벌었다’는 회사가 없는 현실을 더는 정부나 공무원 청렴도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IT프로젝트를 수행한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부실공사 방지법은 ‘적정이윤 보장’이고 ‘적정이윤 창출’만이 IT산업을 살찌울 수 있다.
얼마 전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끝났다. 도의원이나 시의원들에게 의회청사 새로 짓는 일과 말 많은 해외 시찰을 하는 대신 제발 의회 홈페이지 만드는 예산을 깎지 말기를 부탁한다.
서두에 언급한 시의회 홈페이지 입찰결과는 30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리고 1년간 무상 유지보수·기술지원·교육지원 등 약 17페이지에 걸친 특수계약조건과 세부과업을 실현해야 한다. 이쯤 되면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가 와도 결코 답이 없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중소 IT기업들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해치워 버린다. 그들이 자랑스럽다.
김정상 제노 대표kjs@xenoinf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