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예약 판매의 덫`

 최근 가전업계에 예약 판매가 신드롬처럼 확산되고 있다. 휴대형 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내비게이터 등 젊은층이 주 고객인 휴대가전은 예약 판매가 일종의 ‘등용문’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대기업도 예약 판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약 판매가 처음 도입됐을 때 기업들은 계절적 특수를 감안해 생산물량을 조절하기 위한 목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심상치 않다.

 최근 단적인 사례가 있었다. 유경테크놀로지스는 지난 7월 18일과 27일 휴대형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P2’를 예약 판매하고 8월 21일 순차적으로 배송을 시작한다고 했다. 한 달 전에 이뤄진 예약 판매였지만 소비자는 회사 측이 준비한 5700대를 모두 주문하는 열성을 보였다. 유경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준비한 수량이 매진됐다고 대대적인 홍보까지 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금 고객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 달도 부족했는지, 약속한 배송 일자를 한 차례 연기하더니 처음 출하한 물량도 주문량 5700대 중 160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미 고객의 지갑에선 두 번이나 할부금이 빠져나갔는데 물건을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이 빚어졌다. 제품을 충분히 생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는 데만 급급했던 게 원인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IT업계에 관행처럼 굳어진다는 데 있다. PMP 업체인 이랜텍은 무려 4개월이 지나서야 예약 판매한 제품을 배송했는가 하면 팅크웨어도 최근 개발·생산 과정의 차질로 지상파 DMB 내비게이터를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 이런 업체를 다 꼽기도 힘들 정도다.

 게다가 한 제조업체 임원은 “위험 부담이 있지만 예약 판매가 중소 기업들에는 홍보 효과와 동시에 금전적인 장점이 있어 쉽게 유혹을 떨칠 수 없다”며 “예약 판매의 부작용은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애플의 제품들은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한 다음날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파급력 있는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시장을 선점하고 싶다면 신제품 발표와 동시에 제품을 시판해야 한다. 구매한 제품을 구매자가 가질 수 없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