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병규 아모텍 사장(4)

[결단의 순간들]김병규 아모텍 사장(4)

필자는 사업을 하겠다고 꿈꾸었을 때부터 세계 최고의 제품을 구현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그럴 자신도 있었다. 젊은 패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오만함과 교만함의 발로였던 것 같다.

 필자가 유유에서 직장생활을 할 당시는 노사 분규가 한창인 때였다. 필자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심하게 겪으며 ‘저들은 왜 내 마음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필자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대하는데 상대방은 필자의 마음을 모른다고만 생각했다. 인간적인 배신감도 느꼈다. 그랬기에 그들을 이해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으며 잘못된 부분은 남들만 탓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비로소 ‘믿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겸손하지 못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진심으로 반성했다.

 사람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었던 것이다. 한 순간의 깨달음이었지만 이것은 생각을 바꾸게 해주었다. 생각이 바뀌면 태도가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처럼, 생각의 전환은 필자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이는 회사창업에도 이어져 1994년 아모텍을 설립할 때 사훈을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정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에도 믿음이 부족한 상태였으므로 사훈을 그렇게 정한 것이 쑥스럽고 계면쩍지만, 아모텍이 발전하게 된 원동력도 그같은 정신으로 인한 것이기에 그 때의 결정이 옳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아모텍은 벤처회사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 와중에 IMF가 터졌다. 차입금을 통해 R&D투자를 많이 하고 매출은 거의 없는 회사들은 도산의 위기로 몰렸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높은 금리로 인해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하루가 다르게 부도로 쓰러졌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모텍이 망한다는 사실보다 그간 축적한 연구개발, 사업기반이 헛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워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LA 산호세에 있는 벤처캐피털을 만날 기회도 얻었고 일부 투자자들로부터 투자 의향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여러 투자자들과 만나 우리 기술력을 알렸고 역시 일부 투자자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이었으므로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지만 외국투자를 유치하게 될 경우 핵심기술 유출 가능성 때문에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국내 모 투자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갖고 있었던 부채 대부분이 정부 정책지원자금이어서 이자 부담이 커지는 압박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수출에 주력했던 만큼 환율상승에 따른 환차익 덕분에 우리에게 긍정적인 상황들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차츰 어려운 고비도 극복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의 노력도 있었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3)’라는 성경 구절처럼 단지 우리 힘만의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모든 위기는 우리를 더욱 단련시키며 하나로 단합시켰고, 창업이래 첫번째 위기를 극복하고 2000년대 새로운 시대의 도약을 맞이하고 있었다.

 pkkim@amote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