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권도균 이니시스·이니텍 이사회 의장(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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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월 세계 제1의 지불처리회사인 퍼스트데이터에 한국모바일페이먼트서비스(KMPS)를 매각했다. 사진 왼쪽이 필자다.
< 2007년 1월 세계 제1의 지불처리회사인 퍼스트데이터에 한국모바일페이먼트서비스(KMPS)를 매각했다. 사진 왼쪽이 필자다.>

(4·끝) 끊임없는 배움의 길을 가다

 스스로 돌아보면, 필자는 끊임없이 배움의 기회를 얻었고 이를 즐기며 살았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필자는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했다. 가난한 집안 장남이 아니었으면 작곡이나 국문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교내 중창단으로, 대학시절에는 대학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대학 전공으로 전자과를 선택하며 이 분야에서도 새로운 지식과 배움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산을 전공하면서도 형편이 못 돼 PC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지만, 직장에 들어가 PC가 배당되면 업무 외에 PC를 다루는 일에도 능숙해지리라 결심했었다. 실제로 회사에 입사한 지 6개월만에 다른 직원들의 삭제된 파일 복구와 고장난 PC 복구 등을 도와주는 사람이 됐다.

 전산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 첫 1년이 넘도록 프로그래밍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새 부서에 배치됐다. 가장 근무 환경이 열악하고 격주 토요휴무조차 없는 부서지만 프로그래밍을 원없이 할 수 있었다. 필자는 며칠씩 밤을 지새워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수년간 이 일을 했다. 이후 연구소로 배치된 후,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이 월등히 향상된 것을 알게 됐다. 연구소에서는 더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할 기회가 있었으며 이 모든 배움들이 오늘의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

 회사를 창업하고는 1인 3∼4역을 해냈다. 아침에는 고객을 만나 영업을 하고 오후에는 각종 서류들, 통장관리, 장부정리를, 저녁때는 개발팀과 제품 회의를 하고 새벽까지 프로그래밍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엔지니어였다. 수표와 어음도 구분하지 못했고, 어음을 어떻게 할인하는지, 회계장부는 어떻게 쓰고 회사의 캐시플로우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영업과 마케팅, 전략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고 조직은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하는지도 모르는, 오로지 기술만 아는 엔지니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회사는 조금씩 성장했다. 투자도 받고 직원도 많아졌다. 그러나 경영자가 해야 할 일과 엔지니어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던 필자 때문에 회사 성장은 둔화하고 변화에도 둔감하게 됐다. 그렇게 수년을 지내는 동안 필자는 스스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고 그때부터 열심히 경영학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꽂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전산학 전공서적, 컴퓨터 기술서적들을 치우고 전공도 경영학으로 바꿨다.

 벤처기업에서 글로벌 IT서비스 선도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이니시스의 자회사였던 한국모바일페이먼트서비스(KMPS)를 세계 제1의 지불처리회사인 퍼스트데이터에 매각하고 1년 반 가까이 함께 일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역시 필자에게는 많은 깨달음과 배움의 기회가 됐다.

 이니텍과 이니시스, 그리고 새롭게 가족이 된 뱅크타운, 3개 회사는 매출 1000억원, 직원은 400명에 이르는 기업이 됐다. 어느 단계에서 보면 회사는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반면 회사 발전에 걸맞게 필자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돌아보면 부족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올 말부터 2년간 좀 더 체계적인 배움의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인간의 수명이 급속히 연장되면서 중·고교,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사용할 수는 없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끊임없이 배우는 방법을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결단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douglas@inic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