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그들만의 IT 용어

월요논단

 어느 날 사업부의 보고서를 보다 문득 ‘SSD 시장 전망이 밝은 가운데…’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SSD?’ 모르는 약어였다. 친절하게도 단어 옆 괄호 안에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라고 풀어주었지만 그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국 단어를 검색해 원문 단어와 의미를 확인한 후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저장장치임을 알았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각종 외래 용어와 약어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IT업계의 외래어, 함축용어 사용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물론 IT를 대표하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SW) 등이 미국을 기반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어표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반인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빨리 알아들을 수 있는 다른 형태의 표기 방법이나 용어는 없는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요즘 기업과 단체가 강조하고 있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이른바 ‘상대방에게 들리고 먹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전달하려는 바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IT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최신 기술이라도 고객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그런데 현재는 IT 초보자나 일반인이 특정 IT 분야나 기술을 알려면 일단 관련 용어부터 정리하고 들어가야 이해가 될까 말까 한다. 게다가 IT업계에서는 거의 매일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고 있다.

 숙달된 IT 전문가들은 이러한 용어를 마치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사용한다. 연구가 본업인 학계나 연구소는 물론이고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기업에서조차 각종 문서, 세미나 등에서 상대방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고 신조어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를 만들고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것이 똑똑한 직원, 잘나가는 회사의 전략처럼 통용된다. 듣고 보는 사람은 상대방이 뭔가 알 수 없는 용어를 계속 쓰는데 물어보자니 눈치가 보이고, 가만히 있자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핵심 내용을 놓치는 것 같아 난감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입시를 앞둔 초조한 수험생처럼 새로운 용어가 나오면 당장 그 용어의 뜻부터 공부해야 마음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무절제한 IT용어 사용이 적잖은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IT 전문가가 아닌 대부분 고객이 IT 약어를 이해할 수 없고, 이로 인해 기술도입 과정에서 불필요한 혼란도 발생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구매하거나 도입 결정을 하기란 당연히 힘들 것이다. 지금처럼 해외에서 쏟아지는 용어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정의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혼란과 어려움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다행히 얼마 전 IT 용어 표준화 포럼을 열고 산·학·연이 한자리에 모여 현상과 문제점을 공유, 용어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국내 산업환경과 기대효과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체계적인 작명 시스템을 갖추어 누구나 친숙하게 IT 용어를 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IT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기 중 산소와 같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특히 과거 전문가나 기업에만 해당된다고 여겨졌던 SW 분야도 이제 국민 모두의 일상 생활에 깊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사용자가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련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루빨리 ‘그들만의 IT 용어’가 아닌 ‘모두의 IT 용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유병창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bcyoo50@posdat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