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Mr휴대폰’이기태 다음은

 박지성일까, 차범근일까. 선동열이다, 아니다 박찬호다. 스포츠팬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역대 한국 최고 스타 논쟁이다. 관점에 따라, 기호에 따라 주인공은 엇갈린다. 그렇다면 역대 IT맨 가운데 세계 시장에서 최고의 스타로 대접받았던 사람은 누구일까. 개인적 경험으로 꼽자면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국제행사에서 마주친 많은 외국 언론인이 ‘한국의 IT전문기자 명함’을 내미는 순간 ‘삼성 휴대폰과 이기태’에 관한 질문을 쏟아냈다. 심지어 인터뷰를 주선해줄 수 없겠느냐는 ‘청탁(?)’까지 받았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이기태’는 살아 있는 ‘레전드’였다. 기술과 품질이라는 자기 확신에 가득찬 이 저돌적 기업인은 한국에선 애니콜, 글로벌 시장에선 ‘삼성폰’의 신화를 창출했다. ‘미쳤다’는 소리 들어가며 한발 앞서가는 고기능 제품을 만들고 명품 마케팅을 시도했다. 맨땅에서 세계 3위로 올라섰고 하이엔드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 매김했다.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수익률 25%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비전과 전략은 휴대폰뿐 아니라 글로벌 정보통신 트렌드로 읽혀졌다. 해외언론이 붙여준 별칭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한국의 ‘미스터 휴대폰’이었다. ‘Mr. 휴대폰’이 이룬 것은 싸구려 한국제품의 이미지를 고급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도요타가 렉서스로 변신한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휴대폰 시장에 10여개 거대기업이 군웅할거하던 시절이었다.

 1분기 휴대폰 업계의 실적은 글로벌시장이 본격적인 재편기에 돌입했음을 보여준다. 지멘스가 경쟁에서 이미 낙오됐다. 모토로라는 4위로 처지면서 매각 전망까지 나온다. 반짝했던 소니에릭슨은 뒷심이 달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10강 체제에서 5강으로 좁혀지더니 어느새 노키아-삼성-LG의 3강 구도로 압축됐다. 이머징 시장 선점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던 지난 1∼2년과는 다른 꼴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페니’와 ‘레이저’를 신흥 중저가 시장 중심으로 수억대씩 팔아치울 때 삼성과 LG는 포지셔닝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마침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최지성과 안승권이 새로운 사령탑에 올랐다. 최 사장은 새로운 길을 찾았다. 기술과 품질을 내세우는 고가전략이 바탕이지만 이머징시장 대응에도 총력을 기울인다. 마케팅의 ‘귀재’라는 평가는 적중했다. 실적이 증명한다. “직원들이 혼을 넣어 만든 제품인데, 싸게 파느니 차라리 팔지 말라”는 것은 ‘이기태형’이다. ‘최지성형’은 “그렇기에 좀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안승권의 LG는 디자인과 하이엔드시장 공략이 핵심이다. 돌풍을 일으켰다. 2분기에는 모토로라를 넘어설 것이다.

 이제부터 진정한 승부가 펼쳐진다. 3G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중국·인도·브라질의 신흥시장은 어느덧 교체수요 시기에 접어들었다. 노키아-삼성-LG 체제는 상황변화에 제대로 대응한 전략의 결과다. 그러나 변수는 많다. 탐욕스런 노키아는 미국까지 돌격하고 있지만 CDMA의 약점, 사업자와의 충돌과 견제, 비즈니스관행 차이 탓에 장담할 수만은 없다. 삼성은 디자인, LG는 고가 브랜드의 연착륙이 시급하다. 애플과 구글의 혁신성도 요구된다. 아프리카와 중동이라는 남아 있는 대형시장도 접수해야 한다. 시장별 차별화 전략의 성패가 달렸다. 한국의 또다른 Mr. 휴대폰이 탄생하고 그래서 ‘100년 가는 기업’이 나오려면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