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방송 진출 모색할까

신문과 대기업에 방송진출 문호를 넓히는 내용의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이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미디어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방송진출을 본격화하면 기존 미디어 시장의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다.

이번에 통과된 개정 신문법과 방송법은 신문과 대기업이 소유할 수 있는 지상파방송의 지분을 10%로 제한하고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지분소유를 모두 30% 이내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미디어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정작 이 법안의 주요 이해당사자로 볼 수 있는 대기업들은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를 보였다.

◇주요 대기업 “방송 진출 실익 없다”=삼성, 현대,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미디어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후 한결같이 “방송진출에 관심이 없다”고 반응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방송에 진출했을 때 돈을 벌든지 그렇지 않으면 기업 이미지라도 높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방송사업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디어법 개정 자체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 어떤 기업이 선뜻 나서겠느냐”면서 “반대여론을 형성해온 쪽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아 상처를 받느니 아예 진출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그동안 케이블TV 채널 등을 운영해온 일부 대기업들의 방송진출이 점쳐졌으나 이들 기업도 대부분 “방송사업 확대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방송진출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예상돼온 CJ는 “미디어법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진출 여부가 미디어법의 핵심 쟁점인데 CJ는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채널은 진출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그보다는 현재 계열사인 CJ미디어에서 하는 케이블TV 채널사업(PP)을 통해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CJ 관계자는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역시 채널보다 콘텐츠가 수익이 나고 전망이 있다고 본다”면서 “CJ는 자체 제작 콘텐츠의 양과 질을 계속 높여 아시아 일류 콘텐츠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리온은 영화관 메가박스를 운영하다 매각했으며, 현재 온미디어를 갖고 있으나 이마저 사업성이 떨어져 CJ에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방송사업에 진출할 생각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실정이다.

과거 케이블TV 채널 ’A&C 코오롱’을 운영했던 코오롱도 “처음엔 케이블TV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뛰어들었다가 계속 손해만 보다가 매각했다”며 역시 방송사업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4대 그룹에 속하는 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만일 방송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골치 아픈 국내에서 하지 않고 차라리 해외의 유력 방송을 인수하는 게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대기업의 방송진출 가능성을 희박한 것으로 평가했다.

◇통신사들은 어떤가=지상파 방송 진출과 관련해 대기업에선 부정적 기류가 흐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인 일명 IPTV법의 개정으로 거대 통신업체의 종합편성(종편) 채널 및 보도전문 채널 진출 가능성은 비교적 높게 점쳐지고 있다. KT, 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가 종편.보도 PP 지분을 49%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IPTV로 이미 사실상 방송사업에 진출한 통신사들이 방송콘텐츠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 매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출을 점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까지 지상파 방송사와 실시간 전송 문제를 놓고 대립했던 통신업체로서는 이번 기회에 아예 종편 PP를 만들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방송법·IPTV법 개정으로 신문사들이 자금력이 뛰어난 KT, SK텔레콤 등과 함께 종편.보도 PP 진출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삼성 등 재벌 그룹보다는 과거 공기업이었던 KT의 경우 방송사업 진출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이 적은데다 이미 IPTV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신문사들이 구체적인 사업 계획까지 제시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KT나 SK텔레콤 모두 현재는 방송사업 진출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형국이다. 종편.보도 PP 설립을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투입돼야 하는데 투자 규모에 걸맞은 수익성이나 효용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인지 KT와 SK텔레콤 관계자들은 모두 “이번 미디어법 개정과 관련해 특별히 방송사업 진출 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