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view point - CIO칼럼_정은조 한진해운 상무

[CIOBIZ+]view point - CIO칼럼_정은조 한진해운 상무

 한진해운은 얼마 전 재해복구 훈련을 불시에 실시했다.

 지난 2006년 한진해운은 프로세스혁신(PI) 프로젝트를 실행해 5개 지역으로 분산돼 있던 IT센터를 통합했다. 당시 통합 IT센터에는 글로벌 IT센터라는 위상에 걸맞게 재해복구시스템의 RPO(Recovery Point Objective)는 ‘0’을, RTO(Recovery Time Objective)는 ‘3시간’을 각각 적용했다.

 이후 연 2회에 걸쳐 훈련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업무연속성계획(BCP)을 반영해 정기적인 훈련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예고된 날짜, 시간, 장소에서 훈련을 실시하다 보니 비상시에 과연 설계된 시스템대로 운영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불시 훈련을 실시하기로 마음먹고 이 방침을 이야기하자 실무진이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협력 업체들의 지원도 필요한데 불시에 협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현업의 사용자들이 협조할지 미지수다” “다른 회사들도 불시에 하는 경우는 없다” “위험 요인이 많다”는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됐다.

 나는 역으로 이런 질문을 실무진에게 던졌다. “지금까지 예고된 사고가 있었는가?”

 실제 몇 년 전 미국 지역본부에서 배전반 문제로 3일간 정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흘을 꼬박 밤을 새웠다. 그때 나는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적인 결정이 우선 이뤄져야 하고 그 다음에 시스템 복구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재해가 발생해 주 사무실이 폐쇄되거나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 △임시 사무실의 위치 △업무 대행 인원 배치 △정부·세관·고객·파트너·협력사 등 서드파티에 통보 및 협조 요청 등 우발사고에 대한 계획(contingency plan)이 먼저 시행되고 그에 따른 시스템 복구가 진행돼야 정확하고 신속한 시스템 복구가 이뤄질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힘들게 인식한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구축한 재해복구시스템은 그런 사항들을 감안해 설계·구축됐으며 불시 훈련을 실시한 결과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더라도 실제 상황처럼 훈련을 하지 않으면 비상시에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타협하며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것은 실적에 반영되지도 않고 시행하지 않아도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IT서비스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재해복구시스템과 재난 대비 훈련은 비상 상황에서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IT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프로세스 중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럼 재해복구시스템을 제외한 나머지 IT서비스의 연속성은 어떠한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고도화하면 현재의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등 무지개 빛 청사진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막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완료한 후에는 앞서 기대했던 각종 무지개 빛 청사진들이 회색으로 바뀌거나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름대로 활용성을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운용 단계에 들어서면 새로운 비즈니스 요건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장애나 애플리케이션의 오류 없이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성공적인 시스템도 많다. 그런 시스템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비즈니스 측면의 필요성이 절실하거나 법적 구속력이 강한 시스템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전 계획 단계부터 사용자 요구를 충분하게 반영하고, 프로젝트 관리 계획에 따라 태스크포스 팀장 및 팀원들이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보인다. 그만큼 테스트 단계에서도 충분한 검증을 거치게 된다.

 IT부문에 종사하는 우리는 항상 현업 사용자들에게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스스로는 혁신과 변화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현업에는 원칙과 인내를 요구하면서도 우리 스스로에게는 ‘이 정도면 성공’이라며 관대함을 보이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달리기 초보자가 마라톤 42.195km를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남들이 어떻게 완주를 위해 준비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기초체력을 기르고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려가면서 마라톤의 재미에 빠지는 것이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그리고 5km, 10km,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달리기의 즐거움과 함께 고통도 느끼는 등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세를 교정하고 새로운 훈련방법을 찾아 보고 고수의 말에 귀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한다. 완주에 성공했더라도 지속적인 달리기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의 몸과 대화를 나누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고집스럽게 지켜가는 과정을 겪어야만 진정한 마라토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목표에만 집착해 이에 이르는 과정을 생략하고 처음부터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허상을 가지지는 않았는지 반문해 보자. 또 구축한 시스템이 현업에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얼마나 고민해 봤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jjeong@hanj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