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홀로그램 혁명](https://img.etnews.com/photonews/1001/100106033946_459521183_b.jpg)
2010년은 TV도 영화도 입체영상을 보여주는 3D가 대세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3D 영상의 원조 격인 홀로그램 기술이 이미 공연무대, 행사장, 거리 곳곳에서 한 차원 높은 입체영상의 놀라운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당신이 접하는 시각정보가 허상인지 실제인지 헷갈리는,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홀로그램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삼성 휴대폰 코비의 론칭 이벤트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고객들은 기이한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자 패션쇼 런웨이와 유사한 18m 길이 무대 위에서 느닷없이 한국산 휴대폰의 첨단기능을 나타내는 다양한 홀로그램 영상들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회자의 손짓에 따라 공중에 뜬 입체영상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을 완벽하게 재현한 듯했다.
인라인 스케이터가 무대 위를 휙 지나갈 때 홀로그램 로켓 폭죽과 스파크가 스케이터의 동선을 따라간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몸짓으로 원, 십자가, 육면체를 표현하면 하얀 구름 홀로그램이 원, 십자가, 육면체로 바뀌는 식이다.
무대의 퍼포먼스를 한 방향에서 바라다보는 과거의 홀로그램 공연방식에서 벗어나 무대의 양쪽 객석에서 모델과 홀로그램을 동시에 보도록 360도 홀로그램 영상을 구현한 점도 예술적 안목이 높은 유럽 고객들에게 놀라움을 던졌다. 무대 주변에 가득찬 홀로그램 풍선들이 모델의 움직임에 차례로 터지는가 하면 강아지 풍선 홀로그램 영상이 모델의 손짓에 마치 실제 애완견처럼 반응하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홀로그램에 음성인식 기능까지 더해 사회자가 하는 말이 입 주변에 홀로그램 글자로 표현되도록 했다. 볼륨을 감지해 작은 목소리는 작은 글자로, 큰 목소리는 큰 글자로 나타나는 치밀한 센싱 기술이다.
또 실제 남자 모델과 홀로그램 여자 모델이 함께 춤을 추면서 하트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처럼 놀라운 홀로그램쇼는 처음 봤다면서 찬사를 보냈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마돈나의 공연, 모터쇼 등에서 종종 선보였지만 대규모 상업공간에서 양방향 인터랙션 기능을 갖추고 진행한 사례는 한국기업이 세계 최초다.
행사의 공연기술을 담당한 홀로그램 전문업체 디스트릭트는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미디어 아트에 도전하고 있다. 전통 사물놀이와 3차원 홀로그램 영상을 결합해 예술적 표현의 영역을 한 단계 넓히는 것이다.
이어령 박사가 대본을 쓴 홀로그램 사물놀이 공연 ‘죽은 나무 꽃피우기’는 오는 20∼24일 광화문 아트홀에서 홀로그램과 전통예술의 만남을 선보인다. 일명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김덕수의 사물놀이, 국수호의 춤, 안숙선의 소리가 홀로그램과 만나 실제 무대에서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다.
디지털 문명사회에서 피폐해진 인간 감성과 황폐화된 지구에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과정을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으로 형상화한 이번 공연에는 벌써부터 예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물놀이의 리듬이 공연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죽은 나무처럼 보이던 소품에서 갑자기 꽃이 피면서 생명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관객들은 자신의 눈을 비비면서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실감하게 된다.
최은석 디스트릭트 사장은 “홀로그램 기술을 응용한 휴대폰 론칭쇼는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미디어 빅뱅시대를 맞아 새해에는 홀로그램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홀로그램의 원리=인간의 착시현상을 이용해 허공에 입체영상을 띄우는 홀로그램 원리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1870년대 영국에서는 거울과 투명한 막을 교묘하게 설치하면 빛이 반사되면서 허공에 무엇인가 떠있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기술은 극장에서 귀신놀이를 하는 데 활용돼 화제를 모았고 ‘페퍼스 고스트(Pepper’s Ghost)’라고 불렸다. 현대적인 홀로그램은 두 개의 레이저광이 만나 일으키는 빛의 간섭효과를 이용한 3차원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홀로그램은 1948년 영국의 물리학자 데니스 가보가 핵심 원리를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했고 1960년대 레이저의 개발로 홀로그램의 응용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요즘 접하는 홀로그램은 대부분 빔 프로젝터 반사와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투명 스크린을 조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근감이 느껴지는 3D TV의 입체영상과 홀로그램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홀로그램은 보는 위치에 따라 입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즉 어떤 위치에서는 사물의 왼쪽이 보이고 장소를 옮기면 정면과 오른쪽 모습이 보인다.
현재 나오는 3D TV는 편광안경을 써야만 툭 튀어나오는 원근감을 느낄 수 있다. 3D TV에 비친 영상은 위치를 옮겨도 다른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홀로그램은 맨눈에도 실제 영상과 구별하기 힘들며 현시점에서 3D 영상기술의 최첨단에 있다.
이처럼 압도적 현실감을 구현하는 홀로그램의 가장 큰 단점은 실제 크기의 입체영상을 구현하려면 대형 광학설비가 필요하며 기존 영상매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데이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ICT 산업의 발달에 따라 광통신 데이터 전송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홀로그램 전용스크린과 같은 광학설비 가격도 크게 저렴해지고 있어 홀로그램의 대중화는 그리 머지않다.
편광안경을 쓰지 않고도 시청하는 리얼 3D TV를 구현하려면 결국 홀로그램이 대안이다. 전문가들은 홀로그램 입체TV가 2010년대에 실용화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편광안경을 끼고 보는 현재 3D TV는 겨우 원근감만 느껴지는 입체영상의 초보적 단계임을 잊지 말자. 화면 밖으로 사람이 튀어나오는 진정한 3D TV는 결국 홀로그램을 통해서 구현될 것이다.
◇홀로그램이 녹색성장을 돕는다=홀로그램은 영화, TV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커다란 활력소인 동시에 녹색성장의 도구로도 주목받고 있다. 홀로그램을 이용하면 굳이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현장에 간 것과 유사한 시연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다.
홀로그램은 평면적인 영상회의 시스템보다 훨씬 사실적인 정보전달이 가능하므로 교통수요 자체를 줄이는 친환경 효과가 탁월하다. 2007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하버드대학에서 주는 환경보호론자상을 수상하려고 자가용 비행기로 뉴욕까지 7000마일을 날아갔다. 환경론자들은 15톤의 탄소 배기가스를 공중에 뿌리면서 환경보호상을 수상한 찰스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뒤통수가 뜨거웠던 찰스는 이듬해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미래에너지회의(WFES)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홀로그램을 이용해 연설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홀로그램으로 변신하는 모범을 보였고 대중은 찬사를 보냈다.
백악관에서 물러난 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닌다는 비난을 의식한 탓인지 200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환경회의에 홀로그램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에게 자신의 입체영상을 전송하는 홀로그램 기술은 하이브리드카, 탄소 배출이 낮다는 기차보다 훨씬 효과적인 녹색성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국내외로 출장을 가는 이유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꼭 필요하지 않지만 인간적 접촉을 위해서 가는 일이 많다. 홀로그램 기술을 통해 서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꼭 해외출장을 나가야만 충분한 상황판단이 가능한 사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올해 열리는 G20 정상회의와 같은 국제행사도 언젠가는 홀로그램 회의로 대체될 것이다. 각국 정상들이 직접 만나서 근사한 만찬을 해야만 진정한 외교라고 생각하는 것도 21세기에는 타파해야 할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CNN은 2008년 대선 중계를 할 때 시카고의 여기자를 홀로그램 영상으로 스튜디오에 불러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상상해보라. 2012년 대선에선 유세 차량의 전광판 화면을 통해 기호 몇 번을 외치는 대신에 홀로그램 영상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중 유세를 하는 장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 민생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정치권에서 CO₂ 배출을 줄이는 저탄소 녹색선거(green vote)의 모범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