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참여형 재난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신종플루로 NSC 매뉴얼 한계 드러나…사회안전 국제표준 도입 필수

“NSC 매뉴얼 같은 프로그램으로는 절대 국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재난관리 전문가인 B박사는 2004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만든 ‘매뉴얼’을 예로 들면서, 위기 유형에 따라 필요한 조처를 목록화한 프로그램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NSC 매뉴얼은 2004년 7월12일 제정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에 따라 각 유형별 위기관리 활동에 관한 공공기관의 세부 행동요령을 규정한 것으로,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과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로 나뉜다.

예컨대 풍수해를 당했을 때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련 기관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고속철도 대형사고가 났을 때 한국철도공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을 NSC 매뉴얼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대유행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으면 ‘답이 없다’는 게 NSC 매뉴얼의 허점이다. 예측 가능한 전염병은 매뉴얼로 대처할 수 있으나 신종 플루처럼 예기치 못한 전염병에 대비한 매뉴얼은 없기 때문이다. 신종 플루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복지부 관계자는 “예측만으로 전염병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앞서 B박사는 “매뉴얼 같은 프로그램은 특정한 위기 유형에 대해서만 효과가 있을 뿐”이라며 매뉴얼의 한계를 꼬집었다. 또 그는 “앞으로 어떤 위기에 부닥칠지 모르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매뉴얼에 의지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면서 “하지만 표준화된 재난관리 시스템 도입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단언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를 통해 제정되고 있는 사회안전 국제표준(ISO/TC 223)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안전 국제표준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을 당했을 때에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재난관리 시스템으로, 운영연속성계획(BCP)의 국제표준이라 할 수 있다.

BCP는 어떤 종류의 재난에 부닥쳐도 한정된 자원으로 중단 없이 조직 운영을 지속하고 목표한 복구 시간 안에 평상시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미리 수립하는 행동 계획을 이른다. 대상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사기업 등 모든 조직이다.

BCP에서는 신종 플루처럼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병에 대한 조직운영 대책의 하나로 재택근무·원격회의 등을 권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원 중 신종 플루 환자가 발생했던 일부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활용했다. 특히 포털사이트 ‘네이버’로 유명한 NHN처럼 신종 플루 감염을 확진 받은 직원이 나오자 그 직원이 일하던 층 전체 직원에게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도록 조처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나 원격회의는 태풍·홍수·지진·폭설 등으로 인해 직원들이 출근하기 어려울 때에도 조직을 운영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염병 같은 사회적 재난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자연재해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시스템이란 뜻이다.

때문에 사회안전 국제표준 도입은 곧 효과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게다가 재난관리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체 BCP 표준을 제정해 운영 중인 미국(ANSI/NFPA 1600), 영국(BS 25999) 등도 사회안전 국제표준 제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간사기관인 한국BCP협회(회장 황효수)를 중심으로 매년 2회씩 개최되는 사회안전총회에 참석하며 사회안전 국제표준 제정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1월16일~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8차 사회안전총회에 참석했던 한국BCP협회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께 사회안전 국제표준이 제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난관리 전문가들은 사회안전 국제표준을 도입함으로써, 국내 재난관리 시스템을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방재선진국 등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전문가는 크리스터 쿰린(Krister Kumlin) 사회안전총회 의장의 말을 인용해 “국제표준을 도입하지 않으면, 외국에서 구호물자는 지원받겠지만 다른 도움은 절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재난포커스(http://www.di-focus.com) - 이주현 기자(yijh@di-f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