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산업, 얽힌 실타래 풀자] (상) 신뢰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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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아이패드’로 세계 전자책(e북) 콘텐츠 시장이 들썩인다. 그러나 ‘IT강국’인 우리나라에는 전자책(e북)이라는 ‘대어’가 입질도 없는 상황이다.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지지부진하고 단말기는 ‘가뭄에 콩 나듯’ 팔린다. 지지부진한 시장을 놓고 책임 공방만 한창이다. 전자책 산업 현황과 과제,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집중 분석해 본다.

 지난달 26일 문화부 브리핑 룸에서는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전자출판 육성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출판계 인사도 브리핑에 배석했다. 육성 방안과 관련해 산업계 이해를 반영했다는 정부 의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전자출판 정책연구위원인 이용준 대진대 교수는 육성 방안에 대해 “20회 이상 회의를 열었고 수차례 초안 수정과 의견수렴 과정을 걸쳤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바람과 달리 불만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정부 육성 방안은 콘텐츠 업체만을 너무 배려한 것 같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 인사는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전자책 육성 방안을 내놓는 뜻깊은 자리였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했다는 후문이다. 전자책 산업계는 사분오열이며 정부는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아이패드로 전자책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국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단말기 종류가 늘어나고 가격도 크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수요는 요지부동이다. 미국에서 지난해 판매된 전자책은 대략 300만대. 올해 보수적으로 잡아도 500만대를 넘길 예정이다. 국내는 천양지차다. 산업계는 정확한 집계는 힘들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1만대를 약간 넘겼을 것으로 예측했다. 콘텐츠 부족만을 탓하기에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산업계가 진단하는 전자책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불신’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콘텐츠, 표준포맷 등 모두 현안이지만 정작 중요한 배경은 업계가 서로 믿지 못하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불신의 시작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9년 120여 출판사는 전자책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위해 ‘북토피아’를 설립했다. 북토피아는 1200개 공공과 학교 도서관에 콘텐츠를 납품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출판사 미지급 저작권료 58억원과 부채 95억원을 떠안고 주저앉았다. 10년간 120억여원의 비용을 들여 만든 12만권의 전자책 중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 건 고작 20%에도 못 미쳤다.

 북토피아 사태는 출판계가 몸을 움츠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북토피아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북토피아 때문에 출판사는 유통사를 쉽게 못 믿는다”고 말했다. 출판사가 다시 유통업체에 휘둘릴까 두렵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전자책 콘텐츠 업체를 표방하는 한국출판콘텐츠(KPC)가 “투명한 요금 체제가 정착돼야 한다”며 독자적인 복제방지 시스템(DRM)을 채택하는 배경도 ‘불신’에 근거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전자책 시장도 과거 통신사업자와 음반사 관계처럼 불합리한 수익 구조가 정착될까봐 불안하다”고 전했다.

 유통업체도 할 말이 많다. 북토피아는 출판사 출자로 설립됐다는 것. 유통업체 관계자는 “KPC 최근 행보로 볼 때 제2의 북토피아 사태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용 단말기가 6종이나 출시됐지만 읽을 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소비자 불만은 꾸준히 이어진다. 자칫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시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중호 북센 본부장은 “출판사는 저작권 보호나 제대로 가격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유통업계는 업계에 맡기라고 말하는데 신간이 나오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단 소비자가 전자책에 익숙해지도록 유통과 콘텐츠 업체가 불필요한 견제를 버리고 힘을 모으는 게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박창규 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