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벤처] 벤처 2.0 시대 - 지식재산

지식이 돈이다. 특히 대규모 인프라나 인력을 갖추지 않은 벤처기업엔 더욱 그렇다. 지식재산은 벤처의 경쟁력이자 기회요소다. 여기서 지식은 아이디어를 비롯해 기술 노하우 등을 포함한다. 자본이 부족하더라도 확실한 지식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벤처는 성공할 수 있다. 우수한 기술로 창업한 기술벤처 CEO들이 “핵심기술은 회사 그 자체”라고 강조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벤처에게 쉽지 않은 지식재산

지식재산이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각국의 지재권 다툼이 부쩍 거세지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가 발표한 출원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1960년 95만건이었던 출원은 1982년 184만건, 1993년 279만건, 1996년 585만건 등으로 계속해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출원 대상과 범위 또한 급격히 확대돼 인터넷, 바이오 등 신산업 관련 출원이 급증한 것뿐만 아니라 비기술적인 `비즈니스모델`에서 부터 `민간 전승물`까지 거의 모든 것이 지식재산화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벤처기업에 지식재산 관련 상황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한 사례를 보자. 대기업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해온 A사는 든든한 발주처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예고 없이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다. 그 뒤 충격적이었던 것은 발주처인 대기업이 계열사를 통해 동일한 제품을 제공받고 있었던 것. A사는 소송을 통해 지식재산 침해결정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이미 부도가 난 뒤였다.

대부분 벤처기업은 우수한 기술 하나를 개발하는 데 전력을 투입한다. 그 기술로 수익을 얻지 않으면 회사의 존립 근거가 없다. 따라서 기술 완성 직전부터 수요처인 기업을 찾아다닌다. 지식재산 문제는 이 때 주로 발생한다. 잠재 고객인 대기업들이 짐짓 발주 의사를 보이며 기술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요구하고는, A사가 당했듯 가로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를 막기 위한 각종 장치가 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 기술자료임치제도는 정부가 이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다. 중소벤처기업이 개발한 핵심기술을 지켜준다는 취지다. 벤처기업의 기술자료가 유출됐을 경우 임치물을 통해 개발 사실과 보유 여부를 입증한다. 지난 2008년 처음 도입됐지만 아직 기대만큼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KT·한국전력·LG유플러스·삼성SDS·SK건설 등 몇몇 대기업들이 도입을 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기업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첫해 26건에서 지난해 120건, 올해 7월말 현재 152건 수준이다.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가 대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 중소기업은 1년 넘게 자사의 온라인 디지털콘텐츠를 무단 도용해 판매한 중소기업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는 소송을 걸어 승소했음에도 상대 중소기업이 대표 명의를 바꾸고, 주소지를 지방으로 옮겨가며 항소해 피해가 늘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법적으로 쫓아와야 언제까지 쫓아오겠느냐는 식의 반응”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도 역시 지식재산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떨어지지만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협력 중소벤처기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소협력사에 그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았다는 점. 조정협의를 위해서는 하청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협상테이블에 나와줄 것을 요청해야 하지만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한두 번 볼 사람도 아닌데 대놓고 얼굴을 붉힐 수 있겠느냐”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제도와 함께 인식변화 따라야

최근 기업호민관실은 대기업의 중소벤처기업 부당 지식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공개했다. △특허공유 신고제 △사업제안서 임치제 △사전 비밀유지약정(NDA) 체결 의무화 등 현재 대·중소기업간 거래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들이다. 특허공유 신고제는 대기업이 수급계약 조건으로 특허 공유를 요구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것으로 호민관실 측은 “외형상 합의로 이뤄진 특허공유더라도,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신고하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제안서 임치제도는 중소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재산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부 대기업의 파렴치한 지식재산권 침해도 문제지만, `모르고` 침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모든 정보의 디지털화가 이뤄지면서 기술 자료의 복제와 열람 역시 쉬워졌다. 이같이 모르는 사이 일어나는 지식재산권 침해 역시 벤처기업의 목줄을 죌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지재권을 침해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침해로 인해 얻는 이익보다는 피해가 크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부터 지재권 침해가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재권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 필요성도 역설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