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21>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21>

IT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자. 45조원 투입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계획



사진- 초고속정보통신만 구축기획단이 94년 8월17일 현판식을 갖고 출범했다.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계획



16년 전.

체신부는 21세기 미래 고도정보사화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전략 사업으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했다.

사업비만 44조8000억원. 1994년도 한 해 정부 예산안이 43조25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가정보화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은 당시로선 꿈을 향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훗날 IT강국 코리아의 축포를 쏘게 했고 IMF라는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사업은 IT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고자 한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여름 휴가 시즌을 막 넘긴 1994년 8월 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광화문우체국 4층에서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기획단이 현판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국가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및 운용업무를 담당할 범정부 조직이었다.

현판식에는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을 비롯해 김진현 정보화추진협의회의장(과기처 장관, 서울시립대 총장 역임, 현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위원장)과 이용태 정보통신정책협의회 위원장(삼보컴퓨터 회장, 한국정보산업연합회장 역임, 현 숙명학원 이사장), 윤승영 통신위원장(현 변호사),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SKT 고문), 이철수 한국전산원장(현 한국감리정보시스템협회장), 방석현 통신개발원장(현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 권혁조 신세기통신 사장(현 광운대정보통신대학원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업무를 총괄할 기획단장에는 박성득 체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SK&C고문,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이 겸임 발령났다. 박 단장은 체신부 내 최고의 테크노크라트였다. 다양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1989년 한 · 미 통신회담을 지휘했고 통신사업 개방에 `선 국내경쟁 후 국제경쟁` 정책을 입안하는 등 정보통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부단장에는 천조운 국장(정통부 전파방송관리국장 역임, 작고)이 임명됐다.

기획단 출범은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신사회간접자본으로 간주되고 있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을 한국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국가로 가는 길은 말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잠시 우여곡절 많았던 그 과정을 살펴보자.

1993년 7월 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신경제 100일 계획에 이어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국제화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정보화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지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낙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발표한 신경제 5개년 계획 중 국가정보화 및 정보산업 육성전략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보기기와 통신기가, 소프트웨어, 데이터베이스 육성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정보화 추진이었다. 공공부문과 산업, 지역의 정보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체신부는 이에 따라 정보화시대에 대비한 미래구상 작업에 착수했다. 체신부는 1993년 7월 15일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실무추진단을 내부에 구성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은 정보 고속도로와 같은 개념. 기존 고속도로가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듯 정보 소통을 음성과 데이터, 영상 등 멀티미디어 형태로 신속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추진단은 체신부 실무진과 한국통신(현 KT)과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사회진흥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에서 파견 나온 박사급 전문가 7명 등 15명으로 구성했다. 추진단장은 박성득 체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맡았다.

반장은 윤석근 정책심의관(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장 역임)과 김창곤 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LG유플러스 고문), 반원은 체신부 김인식 정보망과장(우정사업본부 경영기획실장, 한국정보인증 사장 역임), 노희도 기술기획과장(정통부 국제협력관 역임, 현 KF&S 대표), 이종호 정보계획담당(현 동수원 우체국장), 김인수 정보계획담당(현 국민권익위원회 고위공무원), 김치동 기술총괄담당(현 기술표준원 지식산업국장) 등이었다. 한국전산원에서 윤태섭, 소영섭(현 대구대 교수)씨와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하원규(현 전략기획본부 전문위원), 궁상환(현 천안대 교수), 김성규(현 온넷기술 사장), 한국통신에서 김노식, 이재섭 씨(ITU IPTV포커스그룹 부의장)등이 파견 나왔다. 행정지원은 체신부 김병수씨(현 지식경제부 사무관)가 담당했다.

실무추진단은 이 사업의 목적과 개념을 정립하고 세부 추진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김인식 정보망과장의 회고.

“1993년 12월에 충남 도고 한국통신연수원에서 파견 나온 반원들과 2박3일간 합숙을 하며 사업 추진안을 마련했습니다. 밤새 격의 없이 격론을 벌이며 추진안 작업을 했지요. 사업에 따른 법과 제도, 시범사업, 애플리케이션 개발, 국가망 등 개념정리와 추진방향 등의 밑그림은 당시 만들었습니다.”

당시 파견 나왔던 하원규 박사의 말.

“당시 산하 기관에서 파견나온 인력은 7명이었습니다. 내부에서는 우리를 `7인의 사무라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다는 각오의 표현이었습니다. 멸사 · 봉공 · 도전(滅私 · 奉公 · 挑戰)이라는 글귀를 써붙여 놓고 일을 했습니다.”

김성규 박사의 기억.

“저는 기술적인 면을 주로 다뤘습니다. 당시 조건이나 제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추진안을 만들었습니다.”

추진단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1993년 말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축 방안을 마련했다.

박 실장의 회고.

“당초 사업의 가제목은 정보통신기반 또는 정보고속도로 구축사업으로 했어요.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사업으로 통일했습니다.”

윤동윤 체신부 장관은 1월 13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 새해 업무보고에서 “초고속정보통신망구국사업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윤 장관은 1994년 3월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에게 기획단이 마련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방안을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윤 장관은 “오는 2015년까지 44조8000여억원을 들여 전국에 초고속망을 건설하고 이에 관한 정책 및 사업계획 심의조정을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적 추진위원회를 상반기 중에 구성하겠다”고 보고했다.

윤 장관은 “이 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올 상반기 중에 체신부에 기획단을 설치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체신부는 1994년 3월 23일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 종합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체신부가 발표한 종합계획에 따르면 우선 초고속정보통신망사업은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며 1단계(1994~1997년) 1조6154억원, 2단계(1998~2002년) 4조3958억원, 3단계(2003~2015년) 38조7665억원 등 모두 44조7777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오는 2010년까지 공공기관 · 연구소 · 대학 · 주요기업을 연결할 초고속국가정보망에는 8910억원(2%), 2015년까지 전국의 모든 가정에 광케이블을 설치하는 초고속공중정보통신망에는 42조504억원(94%), 핵심기술과 응용서비스개발에 1조8363억원(4%)을 사용키로 했다. 재원조달은 국가정보통신망 구축비의 경우 정부재정과 한국통신 주식매각대금 및 배당금등 공유재원으로 충당하고 공중정보통신망구축 및 소요기술개발은 통신사업자재원으로 충당하되 민간기업의 투자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IT를 기반으로 신화창조의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 추진체계 구성은 예상과 달리 자꾸 늦어졌다. 다른 부처에서는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체신부에 대한 다른 부처의 견제도 상당했다. 갈 길은 멀고 마음만 급한 체신부였다.

박 실장의 증언.

“체신부는 당초 이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초고속정보통신망추진위원장은 대통령으로 하고 실무위원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당시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상공자원부 장관 역임)을 통해 그런 방안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위원장을 국무총리가 맡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정부는 1994년 4월 14일 오후 정부종합청사에서 이회창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초고속정보통신시스템구축 기본계획`과 추진체제를 확정했다. 이 총리는 이날 “이 구축 사업은 정보화사회를 맞아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일이므로 범정부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진위원회는 부위원장인 경제기획원 장관을 포함해 내무 · 재무 · 국방 · 교육 · 상공자원 · 건설 · 보사 · 교통 · 체신 · 총무 · 과기 · 환경 · 공보처 등 14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했다. 총무처는 추진체계가 확정됨에 따라 추진위와 실무조정위 및 기획단설치를 위한 근거규정을 대통령령으로 마련키로 했다. 이에 따라 5월 30일 대통령령(14275호)로 총리가 위원장인 초고속정보화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체신부는 각부처 1급으로 구성하는 실무위원회는 주무부처인 체신부 차관이 맡고자 했으나 이도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등의 반대로 좌절됐다.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실무위원장은 기획원 차관이 맡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만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할 기획단은 체신부에 설치키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추진체계를 둘러싼 부처 간 논란은 이렇게 일단락 됐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