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희망이다] `MIT 글로벌 스타트업 워크숍 2011`을 가다

[스타트업이 희망이다] `MIT 글로벌 스타트업 워크숍 2011`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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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창업은 문화였다. 참가자들은 진지하되 무겁지 않고, 절실하되 처절하지 않았다. 흔히 접하는 우려의 시선도 이곳에는 없었다. 성공한 선배 창업가들도 이들의 의지를 북돋았다.

 이뿐 아니다.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가 멘토였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속에서 뼈대뿐인 아이템도 살이 붙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도 교감을 막지는 못했다. 서울에 모인 300여명의 청년들은 그렇게 2박 3일 동안 부대끼고 토론했다. 이로써 창업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동지’로 거듭났다. 바로 ‘MIT 글로벌 스타트업 워크숍 2011(이하 MIT-GSW)’이 만든 변화였다.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MIT-GSW가 지난 25일 막을 내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업가정신센터의 주도로 1998년 시작된 이 행사는 14년 동안 6개 대륙을 돌며 세계 곳곳의 청년 예비 창업가를 만났다. 올해는 서울대와 MIT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함에 따라 처음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아시아에서는 1999년 싱가포르, 2003년 중국, 2005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네 번째다.

 ◇창업, 참가자를 물들이다=MIT-GSW는 예비 창업가의 도전 정신 함양이 목표다. 따라서 행사는 철저히 예비 창업가에 필요한 사항에 초점을 맞춘다. 창업 아이디어 구상에서 투자를 받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산업과 세계 동향을 소개해 거시적인 안목도 키워준다. 이것만으로는 여느 행사와 다를 바가 없다. 650달러(약 72만원)에 이르는 참가비용이 아까울 수도 있다.

 “창업가는 현대의 영웅이다. 이들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계의 변화를 이끌며 문화를 창조한다”는 빌 올렛 MIT 기업가정신센터 소장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말이다.

 그의 말에서 보듯, MIT-GSW는 창업 문화의 전도사를 자임한다. 청년에게 창업은 어렵지 않음을,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자연스레 전파한다. 각 프로그램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엘리베이터 피치 콘테스트’다. 투자자와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고 가정하고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간은 단 1분.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어야 성공할 수 있다. 발표가 끝나면 “초기 비용은 얼마나 들 것 같나” “후발주자와 변별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등 투자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라는 아이디어로 결승전에 오른 윤자영씨(23)는 “이런 행사를 자주 접할 수 있는 MIT 학생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쟁쟁한 연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도 행사의 매력이다. 올해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장을 비롯해 이동형 싸이월드 창업자,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등이 예비창업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꿈을 현실로 연결하는 장=마지막 날 만난 우리나라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몇몇 참가자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2박 3일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I can help you’입니다. 제 아이디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말이지요. 대략적인 설명을 하면 ‘괜찮다’ ‘계속 연락해보자’는 답이 돌아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말을 섞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만큼 모두가 적극적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대비해 행사 준비위 측은 몇몇 장치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상대에 다가갈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프리스톤즈라는 벤처회사는 행사를 위해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했다. 이 앱은 사전 참가 신청을 받은 모든 이들의 기본 정보를 저장했다. 사용자는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록할 수 있다. ‘포스퀘어’가 위치 기반이라면 이 앱은 사람 기반인 셈이다.

 이 같은 역동적인 분위기는 모두에게 전해졌다. 용인외국어고등학교에서 온 정내희 학생(18)은 “창업이 이처럼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며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더라도 충분히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다. 윤자영씨는 “우리나라는 벤처나 창업을 배고픈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남아 있다”며 “제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문화 개선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행사 준비를 위해 MIT에서 한국을 찾은 앰비카 고엘씨는 “예전에는 한국 기업이라 하면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만 떠올렸는데 실제 와보니 예비 창업가와 벤처기업이 매우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창업을 준비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열정을 크게 느낀 만큼 장래도 밝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엘리베이터 피치 콘테스트 결승에 오른 청주대 최성락씨>

 “좀 더 잘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제 사업 계획을 발표할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청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최성락씨(27)는 ‘엘리베이터 피치 콘테스트’ 결승에 오른 소감을 묻자 이같이 밝혔다. 그가 소개한 아이템은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을 위한 카페’ 사업이었다. 우리나라의 농촌 총각과 결혼하는 외국 여성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주여성의 정착을 돕는 시스템은 부족하다는 것. 다문화 가정 봉사활동을 하면서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목격했던 그는 해결책으로 카페를 떠올렸다. 만약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씨는 “다문화 가정 중 50% 이상이 가정불화를 겪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던 끝에 이 사업 아이템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로부터 “초기 비용은 얼마나 예상하는가” “수익 모델이 가능하겠는가” 등의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대화가 영어로 진행되는 콘테스트의 특성상 상세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이 아이템은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하는데, 이를 설명하기에는 시간과 영어실력이 다소 부족했던 것.

 소프트뱅크 벤처 코리아의 지원으로 행사에 참가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했다. 외국인과 창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자리도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씨는 “2박 3일 동안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마음껏 맛봤다”며 “이번 경험이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대한민국을 창업 요람으로>

 지난 24일 행사장 한쪽에서는 우리나라 청년 창업의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갖춘 창업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의 역할’ 세션을 마련한 것.

 이 자리에는 정부와 대학의 지원 부족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모였다. 대졸자의 취업난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해결방안으로 창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션 참석자들은 특히 대학에서 아직도 ‘창업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에 젊은이들이 쉽게 창업에 나서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강성태 공신닷컴 대표는 “대학에서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더욱 많은 학생이 창업에 나설 수 있을 텐데 우리나라는 창업과 학업을 병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전해나 애드투페이퍼 대표도 “대학생은 신용도를 판단하기 어렵다 보니 창업을 앞두고 초기 자금 부족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옥 교과부 산학협력관은 “교과부는 현재 대학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창업강좌, 창업동아리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보다 집중적으로 창업 인재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예산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