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방송과 인연이 깊은 지도자도 드물 것이다. 그는 일생 동안 결정적인 순간에 방송의 힘을 빌렸고 방송과의 연관이 이뤄졌다. 이러한 사례는 역대 대통령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 같다. 나는 5·16 50주년을 맞는 이즈음에 그가 숙명적으로 방송과 함께한 지도자였음을 절감한다. 1961년 5월 16일 ‘구국의 입지(立志)’를 KBS방송국(남산)에서 개시했고, 1979년 10월 26일 그의 생애도 KBS송신소(당진) 방문으로 마감했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의 웅지를 펴기 위해 5·16 거사 꼭두새벽, KBS남산방송국을 점령한다. 그곳에서 당직 아나운서 박종세(朴鍾世)를 만나 협력을 받고 평생 동지가 됐다. 5·16의 성공이 방송의 힘만은 아니겠지만, 그는 이미 방송의 위력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 해, 그는 한국에 TV방송의 시작을 약속했다. 박정희는 그해 끝자락인 12월 31일 저녁 남산을 방문해 KBS TV 개국식에 참석한다. 그는 낙후된 조국이 너무 안타까워서였던지 이렇게 ‘빨리빨리’ 문화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서거 전 마지막 공식 행사도 기이하게 KBS에서였다. 운명의 날인 10·26에 그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잇는 삽교천 방조제 개통식에 참석한 후, KBS당진송신소 준공식에서 정규방송 버튼을 누른 후 서울로 돌아갔다. 초대 소장으로서 그를 안내했던 박경환(朴敬煥) 선배를 나는 일주일 전 선비 방송인 장기범 선생 추모식에서 만나, 건강을 확인한 바 있다. 참으로 기묘한 일은 박정희가 어떤 운명으로 그 웅지의 시작과 생애의 종막을 방송과 했으며, 그 많은 방송인 중에 어찌하여 종씨들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연치곤 참으로 묘하다 싶지만 나는 신의 계시로 치부하며 산다.
박정희는 그가 남긴 휘호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1974. 5. 20)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고 보듬었던 진정한 지도자였다. 다른 대통령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탁월한 애국심, 인재등용의 리더십, 선공후사의 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을 실천한 큰 인물이었다. 어느 해 언론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지지도가 79.9%, 66.9%로 단연코 월등함을 볼 때,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가 장기 집권을 지향한 독재자라는 허물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우뚝 선 선지자로 추앙받는 이유를 우리 지도자들이 배워 실천했으면 좋겠다.
한국방송의 최고 원로 최창봉(崔彰鳳)을 가끔 뵐 때마다 그는 박 대통령을 회상한다. 그 시절 감옥살이를 했건만, 그는 박정희를 진정 존경하며 그리워한다. 최창봉은 그의 진정한 애국심을 직접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5·16 5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요즘 이 땅의 지도자들이 박 대통령의 진정한 리더십을 본받아 국민들을 좀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민심 이반도 감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하도 많아 너무 답답한 세상이니까.
김성호 객원논설위원·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kshkbh@kw.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