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펴냄
때로는 지은이의 말이나 해설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으면 좋을 책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특히 추리소설이 그렇습니다. 이 책이 그런 경우입니다. 어쩌면 사무라이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이 아리송한 에세이를 읽기 전에 말미에 붙은 작가 한 마디부터 읽기를 권합니다.
![[e북 초대석] 칼과 황홀](https://img.etnews.com/photonews/1202/243699_20120209111519_405_0002.jpg)
“칼은 생명을 취하고 조리하는 도구다. 때로는 잔혹해 보이기도 하고 예에 다다르기도 하나 이 또한 엄숙한 생명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일 뿐이다… 매일 먹고 힘을 얻으며, 마셔서 기갈을 풀고 도취경에 든다. 생명이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니 응당 황홀하다. 칼과 황홀 사이에 음식과 인간, 삶이 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이야기꾼으로 정평이 난 소설가 성석제의 음식 에세이입니다. 그렇다고 맛집이나 미식에 관한 잡문이 아닙니다. 작가의 추억과 웃음, 그리고 페이소스가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대학신문 현상문예에서 자신의 시에 가작을 준 선생님에게 항의차 찾아갔던 지은이는 어쩌다가 술이나 한 잔 사달라고 조르는 데 그치죠. 그리하여 선생님을 따라 돌구이집에 가서 쇠고기가 고기 중 왜 가장 비싼지 알게 되고, 고기의 맛은 지방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차돌박이를 처음 맛봅니다. 지은이의 한 달 분 용돈을 지불하는 걸 보고 선생님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심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답니다.
`고기를 먹었으니 어지간한 걸로는 맛을 모를 테니 좀 센 걸 먹으러 가자`해서 따라간 전문식당에서 코끝이 아리고 눈물이 쏟아지는 홍어찜을 처음 접합니다. 소주를 벌컥벌컥 물처럼 들이킨 지은이는 선생님과 헤어져 간신히 지하철을 탔는데, 아뿔싸! 더럽기 짝이 없는 전동차 바닥이 벌떡 일어나 귀한 음식을 연속으로 먹은 내 입에 쩍하고 제 입을 맞추는 게 아닌가.
충격에 기절한 지은이는 차량기지에서 깨어나 샛별을 바라보며 철로를 걸어 나오는데 자갈이 밟히며 서로 몸 부비는 소리에 이제 나도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답니다.
채식주의자인 아들을 유혹하는 어머니표 쇠고기라면과 돼지기름을 쓴 무쇠솥 김치볶음밥, `겁나게` 진한 벚굴, 울릉도의 약소, 독일의 `할매 포차`에서 먹은 독일식 소시지 `부어스트` 등 `밥상`을 다룬 1부, 라이벌 대학 경기가 끝난 후 얼떨결에 상대 응원단에 휩쓸려 맛본 소주칵테일 등 `술상`을 다룬 2부, 찻상과 후식 등을 다룬 3부까지 책은 한 토막도 버릴 게 없는 `진수성찬`입니다. 만화가 `정훈이`의 위트 넘치는 삽화가 풍미를 돋우고, 끝에는 책을 읽으며 군침을 흘렸을 이들을 위해 언급된 음식점을 담은 약식 맛지도를 곁들인 일품요리기도 하죠.
* 책 속의 한 문장: 막걸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이나 운동으로 땀을 흘린 뒤에 마시는 생활의 술이다. 생활에 중독되는 일이 없듯 순전히 막걸리 때문에 중독이 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술을 부르는 술,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따로 있는데 그건 대부분 독주다.
자료제공: 메키아 (www.mek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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