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관행 개선, 하도급만 웃는 건 아니다

[기자수첩]관행 개선, 하도급만 웃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장비 유지보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거의 공짜에 가까웠던 국내 유지보수 시장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통신장비 업계는 곧바로 환영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또 다른 이들이 슬며시 웃었다. 바로 통신사 구매 담당자들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앞으로 통신사는 장비 회사에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필요할 때마다 부르는 일명 `콜베이스` 같은 통신사와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히려 가이드라인 시행에 응원을 보냈다.

“우리도 통신사 직원 이전에 사람입니다. 늘 얼굴을 맞대고 보는데 장비 회사에 불리한 계약을 하면서 왜 불편하지 않았겠어요.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명확한 기준에 따라 사업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겁니다.”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라`는 상부 지침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가 생겼다는 안도감이다. 그만큼 통신사 쪽도 비정상적인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안타깝지만 국내 통신장비 업계는 지금도 정상적인 생태계를 가지지 못했다. 초고속인터넷, 4세대(G) 이동통신 등 서비스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 타이틀을 얻었지만 밑을 받치는 인프라 산업 환경은 후진적 환경에서 벗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역학관계에서 발생한 부당한 계약조건은 관행으로 치부돼버렸다. 장비 회사의 거의 모든 매출이 통신사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부조리가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유지보수 가이드라인 발표는 반갑다. 비록 일부분에 걸쳐 있지만 건강한 생태계 구성을 위한 한 걸음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다만 강력한 후속조치로 말뿐인 `제도 개선`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장이 정글의 법칙만으로 돌아간다면 주도권을 쥔 쪽은 언제나 한 점의 빵이라도 더 먹으려고 하는 법이다. 하지만 맹수만 있는 숲은 오래가지 못한다. 중국 어느 동물원에서는 먹이가 부족하자 호랑이끼리 물어뜯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질서가 파괴되면 결국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김시소 통신방송산업부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