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디스플레이, 제3의 물결이 온다 <10> 장비업계,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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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백만달러)

(자료:디스플레이서치)

# 올 들어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 2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대형 LCD 시장의 불황 여파로 패널 업체들의 투자가 실종되면서 장비 시장도 극도로 위축됐다. 국내 대표 장비 업체인 에스에프에이의 올 상반기 매출은 201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3432억원)보다 40% 이상 줄어들었다. 중소 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LIG에이디피의 상반기 매출은 122억원으로 지난해(656억원)보다 80% 이상 감소했다. 특히 매출액에 맞먹는 10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국내 장비 업계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사상 최악의 불황이라고 할 만하다.

[연중기획] 디스플레이, 제3의 물결이 온다 <10> 장비업계, 변해야 산다

LCD 업체들의 투자가 사실상 실종되면서 국내 중소 장비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 및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디스플레이 장비 연구개발 모습.
LCD 업체들의 투자가 사실상 실종되면서 국내 중소 장비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 및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디스플레이 장비 연구개발 모습.

하지만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축인 장비 산업이 이대로 주저 앉아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전방 산업의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사업 다각화 및 해외 진출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또 취약한 원천 기술로 인해 불황기에 `빈익빈`이 가중되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어야 한다. 국내 장비 업계에 `변해야 산다`는 명제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사상 최대 불황=시장조사업체 NPD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올해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은 33억4300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이 같은 시장 규모는 지난해(120억달러)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사상 최저 수준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업체들이 대형 LCD 패널 양산에 들어가면서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유럽 금융 위기 여파로 수요도 불투명해지면서 국내외 LCD 업체들의 투자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길게는 7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국내 LCD 업체들은 설비 투자를 대폭 축소했다. 여기에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도 경제성을 갖춘 대형 패널 생산 기술 확보가 지연되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같은 불황이 2년 이상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내년부터 중국 업체들의 8세대 LCD 투자와 5.5·8세대 OLED 투자를 중심으로 장비 시장이 다소 회복될 전망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은 내년에 다시 100억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국내 장비업체들은 디스플레이 시장 변화 및 투자 회복에 대응할 수 있는 원천 기술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선명 및 고휘도 제품 비중이 증가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박막트랜지스터(TFT) 제조 기술과 플렉시블 및 투명 디스플레이 등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취약한 원천 기술 악순환=최근 국내 장비 업체들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패널 업체들의 투자 실종이 현실적인 배경이다. 호황기 패널 업체들의 신규 라인 투자가 유일한 성장동력인 수주 산업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장비 업체들의 내부적인 요인도 위기를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장비 업체들은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핵심 부품을 수입하고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장비 `제작`에만 몰두해 온 경향이 있다”며 “LCD 전공정의 핵심인 플라즈마 원천 기술을 이해하고 연관 장비를 자체 개발할 수 있는 고급 엔지니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에서 플라즈마화학증착기(PECVD) 등을 생산하는 대부분 장비 업체들의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핵심 원천 기술 개발보다는 장비 제작과 수율 향상 등 응용 기술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다시 설비 투자가 재개되고, 새로운 신규 장비가 필요할 때 국내 장비업체들이 선도적으로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시장이 위축될 때 해외 장비 기업들은 핵심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한다. 다시 재개될 투자에 대비해 실력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부터 불투명한 국내 장비 업체들에게 연구개발 투자는 먼 얘기다.

◇수출 및 OLED 시장 지원도 필요=국내 장비 업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 지원책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단기적인 대책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OLED 등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연구개발 과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내년 이후 LCD 설비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시장 진출이 급하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조만간 현지 8세대 LCD 팹 건설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장비 시장도 서서히 열릴 전망이다. BOE·차이나스타(CSOT) 등 중국 현지 업체들의 8세대 투자도 다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KOTRA,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등과 협력해 `한·중 디스플레이 산업협의회`를 설립하고 현지 패널업체들과 연계한 수주상담회, 무역상담회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또 LCD 장비 업체들이 OLED 신기술을 확보하고 신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개발 과제도 대거 제시될 예정이다.

김호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은 “그동안 소재 및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돼 있던 OLED 연구개발 과제를 장비 산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며 “올 하반기 수요 조사에 이어 내년 상반기부터 착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위축되고 수요가 적을 때 오히려 차세대 기반 기술을 확보하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자금 지원보다는 원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 및 인력 지원이 필요합니다.”

최희환 한국항공대학교 교수(전자 및 항공전자공학과)는 국내 장비 업계의 생존을 위해 패널 대기업과 장비 중소기업이 공동 연구개발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천 기술이 부족한 중소 장비 업체들이 패널 업체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기술을 쌓을 수 있는 체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패널 업체들의 기술 노하우가 연관 산업에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면서 국내 장비 업체들의 기반 기술이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수 인력 지원 등을 포함한 개방적인 연구개발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 장비 업체들이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대기업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 국내 장비 업체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장비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경쟁 우위를 가진 분야는 박막트랜지스터(TFT) 분야라고 할 수 있다”며 “초고해상도를 구현하기 위한 미세 패턴 기술과 산화물반도체 등 새로운 TFT 장비 및 공정 기술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플렉시블 및 투명 디스플레이 장비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국내 장비 업체들이 디스플레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바이오, 나노 등 연관 산업과의 기술 융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TFT 공정 기술 등에서 경쟁 우위를 더욱 극대화해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교수는 “박막트랜지스터 기술은 다양한 연관 산업으로 확대 적용이 가능하다”며 “혈액 진단 키트도 기초적인 솔루션은 TFT에 기반하고 있어 국내 장비 업체들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 차원에서 다양한 연관 산업과의 융합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IT 제조 기술을 바이오 및 나노테크놀로지에 접목할 수 있는 융합 연구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국내 장비 업체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 토대를 갖출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과 대책을 정부와 업계 차원에서 함께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불황기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장비업계의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활로를 뚫어줄 수 있는 상생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LCD 및 OLED 사업부 별로 진행해 온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통합해 전 협력사 대상으로 확대했다. 특히 협력사를 대폭 확대하고 연구개발(R&D) 멘토링 등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협력사에게 신규 제품 공동개발 우선권을 부여하고 선진 기업 벤치마킹 기회도 제공한다. 또 생산성 혁신 자금 및 컨설팅 지원 등도 포함된다.
LG디스플레이도 `개방형 혁신`을 기치로 협력사들과 공동 연구개발에 나섰다. 이 회사는 `테크 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차세대 기술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협력사들과 상호 의견을 공유하고 효율성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소재부품 협력사들과의 협업에만 집중돼 있다는 한계도 있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차세대 공정 및 장비 개발을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양종석차장(팀장) jsyang@etnews.com 윤건일·문보경·이형수·정미나·윤희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