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틀에서 만들어야 했는데 괜히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 것 같습니다.”
가상화로 한 대가 두 대 기능을 하는 PC를 만든 A사 개발자의 말이다. 오랫동안 연구해 어렵게 제품을 만들었지만 제도 때문에 시장을 뚫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회사는 법 개정에 따른 망분리 시장 활성화에 맞춰 정부 조달시장 참여를 추진해왔다. 정부가 `창조`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한 사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유한 개발자의 의지를 꺾는 것으로, 이같은 사례가 늘어날 경우 정부 창조경제 활성화 의지가 한낱 구호에 그칠 수 있는 상황이다.
A사 사례는 이렇다. 올해 정부 조달 시장 참여를 목표로 지난해 망분리 PC를 개발한 A사는 지난해 말 전자파·대기전력·친환경 인증 등을 줄줄이 신청했다. 일부는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나머지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 회사는 상당히 기대했다. 하지만 인증 시험원에서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PC는 한대이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추면 인증 기준을 넘어서고, 그렇다고 듀얼PC로 할 수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회사는 인증 기준 바꾸기에 나섰다. 정부·기관 이곳저곳을 찾아가 설득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정부 조달에 참여할 수 있는 전자파와 대기전력 인증을 3개월만에야 받았다. 일반 제품이라면 2주 만에 된다. 회사는 부랴부랴 몇 개 입찰에 뛰어들었지만 시점을 놓쳤다. 설명회도 이미 끝내 상당히 기대했던 정부 프로젝트도 며칠사이로 일정을 못 맞춰 참여를 못했다. 올 상반기 하나의 사업도 수주하지 못했다. 회사 인증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친환경 인증 등은 기준 개정 작업중이라며 `기달려달라`는 회신이 왔다.
회사측은 융통성 없는 인증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PC 시험 기준안이 2011년 바뀐 후 지금에야 추가 개정 작업중에 있다”며 “PC 스펙은 거의 3개월에 한 번 바뀐다. 행정이 산업을 못 쫓아간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증 지연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 하는 것이 외국 사례를 찾아보고 주변에 물어본다. 그렇게 하면 국내에서 창조적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산업계의 `창조`만을 역설할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창조에 부응하는 정부의 변화도 주문한다. 강성근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은 “기업이 만든 창조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시장에 보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세계 최초로 개발된 신기술과 신서비스가 시장에 빨리 보급될 수 있도록 인증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도입해야 한다”며 “신기술 인증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책임을 일정부분 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이달 11일 `규제 개선 중심의 2단계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융합 품목 인증 비용과 기간 절감에 나선다고 밝혔다. 인증기준이 없는 융·복합 신제품은 인증 패스트트랙을 통해 6개월 내에 적합성 인증을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는 과거 산업융합발전위원회에서 한차례 추진했던 것으로 업계에서 실효성에 여전의 의문을 두고 있다.
【표】인증 개념 및 현황
※자료:중소기업옴부즈만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