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도쿄올림픽의 성공조건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도쿄올림픽의 성공조건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경쟁지 이스탄불(터키)과 마드리드(스페인)는 도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도쿄는 하계올림픽을 2회 이상 개최하는 최초의 아시아 도시로, 일본은 하계·동계 올림픽을 통틀어 4회 유치한 국가로 기록된다.

중국 관영매체 CCTV는 개최지 선정 소식을 전하며 “도쿄가 탈락했다”는 오보를 냈다. 신화통신도 `이스탄불 선정` 속보를 전했다가 곧바로 삭제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우리 언론은 “일본 탈락을 바라는 중국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의 속마음을 추측하는 관조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솔직히 우리 언론도 속 쓰린 건 마찬가지다.

사실 선정결과는 의외다. 개최지 선정 막판에 초대형 악재인 후쿠시마 제1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실이 공개된 탓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러시아 G20 정상회의 폐회식 참석을 부총리에게 맡기고 IOC 총회가 열리는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 그는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장담했다. 귀 얇은 IOC 위원들은 속았다. 이튿날 후쿠시마 제1 원전 운영회사 도쿄전력이 원전 오염수 차단 실패를 시인했으니 총리의 말은 죄다 거짓임이 판명됐다. 내용이야 어찌됐든 아베는 외교력으로 승리를 챙겼다. 아베노믹스 이후 참의원 선거 압승으로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했고, 올림픽까지 유치했으니 달리는 말에 올라타 채찍을 잡은 겪이다.

일본의 질주하는데 우리는 난처한 상황을 맞게 됐다. 2024년 또는 2028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꿈꾸던 부산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륙 순환 개최를 원칙으로 삼는 올림픽 관행 탓이다. 해묵은 원전 납품 비리 핸디캡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원자력 외교에 다시 발을 뗀 우리 정부에 일본발 방사능 문제는 또 다른 걸림돌로 솟아올랐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숨죽였던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개최지 선정 직후 혐한 시위를 다시 시작했으니, 이 역시 우리에게 득이 될 리 없다.

그래도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면 앞으로 있을 법한 일본의 태도변화에 기대감이 생긴다. 우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리문제다. 벌써부터 도쿄올림픽을 방사능 올림픽으로 묘사한 패러디물이 넘쳐난다. 축구 조별예선이 치러질 미야기현, 삿포로는 후쿠시마 인접지역이니 일본으로서는 방사능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 올림픽 유치 덕에 전 세계 이목이 일본에 쏠려 있으니 더욱 그렇다.

다음은 군국주의 부활 문제다. 과거사 반성은커녕 헌법을 고쳐서라도 집단적 자위권을 부활하겠다는 집권당의 뻔뻔함 역시 이젠 세계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해야 할 처지다. 정부의 방조 속에 국제 경기장 곳곳에 심심치 않게 내걸리던 군국주의의 상징 욱일기가 올림픽 경기장에서 등장할지도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민심결집을 위해 정부가 조장해온 영토 분쟁, 우파 정부 뒤에 숨어 책임 없이 내뱉는 정치인들의 막말, 민족 우월주의에 근거한 극우 시민단체의 시위 등을 국제 여론 환기 차원에서 어떻게 다스릴지도 관심거리다.

올림픽은 세계 국가와 민족 화합의 장이다. 이런 숭고한 행사를 치러야 할 일본이 비록 잠시뿐일지라도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올림픽을 네 번이나 치르는 국가가 주변국으로부터 망종(亡種)이란 말을 들어선 아니 되지 않겠는가.

최정훈 취재담당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