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생산의 달콤함이 대만 전자산업을 부진의 늪에 빠뜨렸다

한때 세계 전자산업을 주름잡던 대만이 주문 생산의 달콤함에 취해 경쟁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문 생산으로 쉽게 돈을 버는 비즈니스에 안주해 고객이 원하는 바를 읽지 못하고 디자인에 소홀하면서 창의적 제품을 만들 동력을 상실했다는 말이다.

주문 생산의 달콤함이 대만 전자산업을 부진의 늪에 빠뜨렸다

5일 로이터는 대만 기업에 깊숙이 박힌 주문자개발방식(ODM)·주문자생산방식(OEM) 사업 습성이 애플·삼성전자와 경쟁에서 밀려나는 HTC·아수스·에이서의 실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3분기 `마이너스` 실적으로 얼룩진 대만 기업은 최근 2~3년 동안 급격히 추락했다. 로이터는 전문가 통계를 인용해 에이서가 3분기 1억1300만 대만달러(약 40억8000만원) 순손실을 냈다고 집계했다. 전년 동기에는 6800만 대만달러(약 24억5700만원) 이익을 냈다. 최근 에이서 주가는 12년 만에 저점을 찍었다. 얼마 전 실적을 발표한 HTC도 3분기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로이터는 올해 HTC가 총 16억2000만 대만달러(약 585억3000만원) 손실을 낸다고 추산했다. 올해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대만 기업의 과거는 화려했다. 2010년 에이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트북을 많이 만드는 기업이었다. 2011년 HTC는 애플의 뒤를 쫓아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20%를 차지한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두주자였다.

어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산업 구조상 약점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HTC 마케팅 총괄임원은 “ODM 사업자에서 `브랜드`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마케팅 전략은 언제나 도전 과제”라며 “과거엔 단순히 물건을 `전달`만 하면 끝나는 반면 브랜드 기업이 되고 나니 완전히 새 영역에 진입해야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대만 기업은 `원가 절감만이 최고의 덕목`이라 믿어 온 엔지니어 혹은 사업가 손에서 탄생해 성장했다. 제품은 빠르고 가벼워지고 작아지면서 기능도 좋아졌지만 부족한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 마음을 얻지 못했다.

로이터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ODM 사업자로서 습성이 과거 영광을 가능케 했던 요소”라고 전했다. 타이베이의 한 컨설턴트는 “대만 경제는 더 싸게 제품을 잘 공급하는 단순한 공식으로 성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신념이 된 옛 습관은 대만 기업이 소비자를 이해하기보다 단순히 가격을 낮추거나 제품 기능 개선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감성은 사라졌다. 에이서·HTC 등 제품 디자인을 맡았던 앨버트 천 컨설턴트는 “대만 기업의 경영진은 감정의 가치를 중히 여기며 어떻게 더 끌리는 제품을 만들지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제품이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최우선에 두는 삼성전자와 비교된다고 덧붙였다. 애플과 달리 엔지니어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강요받은 대만 디자이너의 현실도 지적됐다. 디자이너를 신뢰하지 않는 엔지니어 출신 고위층 탓이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