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IT,길을 잃다

국민 삶의 질 높이는 행정되려면 IT적 고려 반드시 필요

[미래포럼]IT,길을 잃다

올해부터 도로명 주소 체계가 전면 사용되고 있다.

산업적 논란에서 확인했듯 이 제도 도입에 있어 간과한 사항 하나가 있다. 서양의 편리함을 도입하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정보기술(IT)의 발달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 정책의 검토 및 정책입안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므로 정책의 입안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도입되지 않았거나 초기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IT의 발달에 따라 목적지 안내의 편리성을 제공해 주는 기술의 발전에 대한 검토는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며 IT 전문가의 참여 또한 부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도입을 준비하는 사이에 내비게이션이 크게 보급되고 신규 출고 차량에 기본적으로 장착이 되는 등 내비게이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자리 잡아 지번을 이용한 목적지 이동은 전혀 장애로 인식되지 않게 됐다. 스마트 폰의 보급에 따른 전자지도 앱의 보급은 뒷골목까지 길안내가 가능해지고 교통량까지 실시간으로 반영한 최적의 경로를 제공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IT기술을 고려하지 않고 사전에 충분한 홍보와 교육이 따르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된 새로운 주소 체계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정책 입안자들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수히 많은 민원과 제도 개선에 대한 건의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제도를 인정하고 과감히 되돌린 사례를 찾기 힘들다. 정책 입안자의 실수를 시인하기가 힘들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패에 대한 감사와 불이익이 두려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되돌리는 경우를 본적이 없다.

도로명 주소 도입에 따른 문제점과 반대되는 경우를 하나 더 짚어보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전자주민증 제도를 준비했다. 그러나 도입과정이 잘못돼 현재까지 전국민이 플라스틱 주민증을 사용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이미 해킹으로 유출돼 암거래까지 이뤄지는 실정이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법으로 주민번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주민번호를 대체할 새로운 개인 식별 방식을 채용한 주민증을 도입해야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생체정보를 탑재한 전자여권이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미 전자여권을 몇 년 전부터 발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등록증에 들어간 지문영상을 칩에 탑재한 전자주민증은 왜 발급되지 못하는가? 지문 및 얼굴 영상을 탑재한 전자여권의 사례는 이미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전자주민증의 도입에 대한 저항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은 이미 역내 항공이동에 여권 대신에 시민증을 이용한 본인인증을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준비는 빨랐으나 도입은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전자주민증의 도입은 본인인증을 쉽게 하고 동사무소에서 발급하는 각종 증명서를 인증단말기를 이용하거나 인증에 대한 권리를 양도해 정부의 행정망에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종이자원의 절약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전자정부의 핵심 사안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항에 대해 손을 놓고 전자정부 3.0을 외치는 것은 변죽만 울리는 격이라 판단된다.

결국 정작 필요한 사항은 논의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사항은 도입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마치 최신 IT로 무장한 우리의 내비게이션산업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모습과 같다. 이러한 사항이 어느 한 부처의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IT를 이해하는 ‘관피아’가 없어서일까?

권영빈 중앙대 교수(전자정보연구센터장) ybkwo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