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수십년 군림한 공인인증 대체 가능할까?...귀차니즘에 빠진 금융권 고개만 절레절레

공인인증서와 동등한 보안 수준을 갖췄음을 나타내는 ‘보안 가군’ 인증 기술이 등장해도 당장 전자상거래 결제가 소비자가 체감할 정도로 편리해질지는 미지수다.

기술 도입에 금융권도 일단 지켜보자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곧바로 기술을 도입하기는 무리수라는 시각이 상당수다.

새 기술이 시장에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은행이나 카드사 등 결제 환경의 열쇠를 쥔 금융권이 2000년대 이후 10년 이상 사용해 온 공인인증서 시스템 변화에 적극 나설지가 관건이다.

은행이나 카드사로서는 기존 결제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하는 부담이 있고 사용자가 새 결제 인증 방식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금융사들은 자회사를 이용해 ISP 등 안심결제 기술도 갖고 있다.

5월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는 폐지됐지만 인증 방식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금융사가 공인인증서 대체 기술 채택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가군 인증의 핵심은 부인방지 기능 채택 여부가 관건”이라며 “금융사가 새 기술 채택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인방지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직접 이 수단을 이용해 결제가 이뤄졌는데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또 수십년간 써온 공인인증서 체계의 시스템을 새 기술에 맞게 뜯어고치는 것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위험이 많다는 점도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이는 최근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정보보호 요구가 점차 커지면서 새 기술 채용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결제대행(PG)업체 페이게이트가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금액인증 방식을 도입했을 때 카드 업계가 결제를 거부한 사례에서 보듯 신기술 검증 자체가 어려운 상황을 기존 금융당국과 금융사가 조성해 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온라인 쇼핑 사업자도 조심스럽다. 카드사나 PG사가 전향적으로 다양한 결제 기술을 도입하지 않는 한 먼저 나서서 새 기술을 채택하기 부담스럽다는 태도다.

금융당국과 은행·카드사 등의 암묵적 카르텔을 깨고 소비자가 편리한 결제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증방법 평가 개선 등으로 공인인증서 외에 다양한 인증방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며 “금융사가 다양한 인증 방법을 채택하도록 유도, 소비자 선택권을 제고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는 전반적 전자상거래 결제 환경 개선의 시작일 뿐이라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아마존과 같은 원클릭 결제가 가능해지려면 고객 신용카드 정보를 기업 서버에 저장하지 못하도록 한 법·제도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아마존·알리바바 등 해외 전자상거래 대기업이 편리한 결제를 앞세워 국내를 노리고 카카오 등 비금융사도 결제 시장에 진출하는 상거래 환경 급변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해외 직접 구매 활성화로 국내외 상거래 및 결제 시장도 점차 통합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 모바일과 온·오프라인 상거래를 연계하는 결제 혁신 기술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에 매달린 국내 전자상거래가 글로벌 트렌드에서 고립되거나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