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찰나의 순간에 순위가 가려지는 냉혹한 경쟁이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메달색이 바뀐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가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적이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올림픽에서 정확한 계측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더 정밀하게 시간을 재기 위한 노력은 올림픽의 역사와 함께 10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초창기 5분의 1초 수준이었던 계측 기술은 1932년 10분의 1초, 1972년 1000분의 1초를 거쳐 현재 1백만 분의 1초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장식할 최신 계측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대 오차 0.001초의 퀀텀 타이머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인 오메가에 따르면 계측을 책임질 핵심 기술은 퀀텀 타이머라는 이름의 시간기록기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인 퀀텀 타이머는 16개의 독립된 시계가 동시에 16명의 경기를 측정해 기억장치에 기록한다. 측정 단위는 1백만분의 1초. 최대 오차는 0.001초에 불과하다.
이렇게 정교한 측정이 가능하려면 측정 장비 역시 중요하다. 카메라 역시 찰나의 시간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주요 경기장에 설치된 오메가의 스캔 '오' 비전 미리아 포토 피니시(Scan'O' Vision MYRIA) 카메라는 초당 1만 장의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부터 도입된 전자 스타트 시스템은 기존의 총을 완전히 대신해 정확한 출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방아쇠를 당기면 소리, 조명, 진동이 동시에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센서 통해 즐기는 새로운 경험
그런데 평창에서 선보이는 계측 기술의 진정한 활용도는 따로 있다. 순위를 가리기 위한 판정을 넘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 속도, 거리 등의 경기 데이터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안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센서다. 선수들이 몸에 착용하는 센서가 각종 계측장비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보면 선수의 발목에 발찌 같은 모양의 센서가 채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센서의 정체는 트랜스폰더. 100m, 200m 등 특정 구간을 통과할 때마다 시간과 순위를 알려준다.
이 기술은 스피드스케이팅의 매스스타트같이 많은 선수가 한꺼번에 질주할 때 유용하다. 이들의 순간 스피드는 시속 60㎞ 이상. 하지만 각각 선수들의 발목에 있는 트랜스폰더는 100분의 1초의 정확도로 실시간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다.
한편 알파인 스키 선수들은 부츠에 센서를 부착한다. 덕분에 우리들은 점프각, 속도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최고 인기 동계스포츠인 아이스하키는 어떨까? 마치 축구게임처럼 주요 선수의 이동거리, 공격루트, 패스 각도, 포메이션 등을 보면서 나름의 분석을 해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스켈레톤, 쇼트트랙, 스키 점프, 봅슬레이 등 다양한 종목에서 센서를 활용한 계측이 이뤄진다. 이를 위한 장비만 약 300여 개에 무게가 무려 230t. 오메가 사는 관련 전문 인력만 3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향후 기술 훈련 자료 등 여러모로 활용될 전망이다.
◇인공지능과 계측 기술, 어느 영역까지?
이렇게 1백만 분의 1수준까지 발달한 계측 기술은 더 정확하고 즐거운 올림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향상된 계측 기술은 흥미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이미 상당 수준으로 올라온 인공지능이 계측 기록원이나 심판의 영역까지 진출하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시기상조다. 그러나 잦은 판정 시비에 시달렸던 태권도가 2011년 전자호구 자동채점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안정화됐듯이 기계심판의 효용성은 갈수록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쟁점은 심판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는 종목이다. 과연 아이스하키의 파울 여부나 피겨의 예술성까지 인공지능이 계측할 수 있을까? 4년 후의 기술이 어떤 해답을 들고 올지 상상해 보는 것도 올림픽 경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글: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