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법 소관부처 중기부로 이관?…"유통산업 진흥은 없고 규제만 커질 우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유통 산업 규제 권한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유통업계가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기부가 소상공인 보호에 무게를 실은 만큼 산업 전반에 규제의 강도가 대폭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유통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척점으로만 인식한다는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현재 소관위 심사 단계를 밟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주무 부처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중기부로 변경하고 관련 사무를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에서 산업부가 대규모 점포 관리 등을 규율하고 있지만 중소상인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중기부에서 사무를 주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지난 15일 중소상공인단체가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면서 법안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유통산업 전반을 총괄하는 주체가 변경된다는 점에서 고강도 규제 법안으로 꼽힌다.

특히 대규모 점포 등록·관리를 다룬 유통법 제3장 17개 조문뿐만 아니라 유통 산업 핵심 법정계획인 유통산업발전계획 시행 주체마저 산업부 장관에서 중기부 장관으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경우 산업부가 5년 단위로 수립하는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도 산업 진흥보다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보호·육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기에 대규모 점포 개설을 위해 필요한 행정 절차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된다. 유통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어렵게 한다는 의도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제5조 신·구조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제5조 신·구조문

당초 유통법 이관 검토를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중소유통산업 관련 조문만 이관하거나 공동소관 법률로 변경하는 안도 제시됐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총 9장으로 구성된 대부분의 조문을 중기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형 유통업계는 좌불안석이다. 가뜩이나 업황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단순한 소관 부처 변경에서 벗어나 유통업을 산업 시각이 아니라 규제 시각에서 바라보겠다는 중대한 정책 변화”라면서 “국내외 유통 환경 변화가 역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한 신중한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통업 진흥이라는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300조원 규모에 이르는 국내 유통 산업을 규제 일변도 정책에 매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유통 산업은 소비자 후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진흥법이 사실상 규제법으로 작용하는 역설 상황에 놓이게 되면 유통 산업 경쟁력 제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산업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소상인도 효과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부처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