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유통업 분쟁 키우는 사업조정제도...이중규제에 경쟁사 견제 도구로 악용되기도

업계 "규제 일원화 등 보완책 시급"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을 둘러싼 갈등은 기술 유출 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통업계 신규 출점에도 상생법 사업조정제도와 관련한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

갈등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으로 사업조정제도 악용과 이중규제가 꼽힌다. 상생보다 규제에 초점을 맞춘 법과 제도가 유통기업과 소상공인의 불필요한 갈등을 촉발한다는 점이다.

상생법 제32조에서 정한 사업조정제도는 대기업 사업 확장으로부터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분쟁 조정제도다. 문제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점이다. 내달 2일 개점을 앞둔 갤러리아 광교점이 대표적이다.

갤러리아는 사업조정을 신청한 용인의류소상공인협동조합과 세 차례 이상 자율조정회의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협의점을 찾지 못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개점 이후에도 상생 협의를 진행하며, 만일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 사업 일시정지 권고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적법한 절차대로 인허가를 통과해 개점을 앞둔 상황에서 다시 규제를 받는 이 상황을 업계는 이중규제로 해석한다. 이미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고 상생협의를 마쳤어도 상생법에 따라 다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심지어 유통법에서 한 차례 상생안에 합의한 단체가 상생법을 근거로 또 다시 사업조정을 신청해도 이를 제한할 방법이 없다. 기업 입장에선 사업 안정성을 과도하게 침해받는다.

롯데몰 군산점도 사업조정제도에 발이 묶인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18년 문을 연 롯데몰 군산점은 개점 나흘 만에 영업 일시중지 권고를 받았다. 유통법에 따라 1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조성하고 지역 상인들과 상생협의도 마쳤지만, 상생법에 의해 다시 추가 상생 합의안을 마련해야 했다.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중복 규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유통법에 따른 지역협력계획서 제출 시 상생법 사업조정 관련 사항을 포함하면 이중규제 소지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생법 허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맹사업에서 사업조정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현행법은 대기업과 가맹계약을 체결한 가맹점주에게도 신청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사업조정제도가 대기업 가맹본부 간 부당한 경쟁에 악용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기업 가맹본부가 경쟁 업체의 출점을 방해할 목적으로 자사 가맹 사업자를 통해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프랜차이즈 제과제빵 업체나 치킨점 등에서 사업조정 제도를 경쟁사 견제 도구로 악용한다는 민원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상생법에서 사업조정의 형식적·내용적 요건만 정의했을 뿐, 이에 대한 확인과 검증절차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제도의 모호함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개정안도 발의됐다. 정갑윤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상생법 개정안은 제도가 악용되거나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청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생법을 관장하는 중기부가 조정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근절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제도 손질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사업조정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함께 듣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아닌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사업조정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