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4>모듈러 방식

꽤 오래된 물건을 우리는 앤티크나 빈티지라고 일컫는다. 요즘엔 '레트로'라고 이르기도 한다. 오래된 제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복고풍이란 용어가 그 가운데 안성맞춤이다. 만일 당신이 어릴 적에 사용한 1985년작 소니 워크맨을 다시 구입할 때 레트로 구매라고 표현한다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혁신이란 매번 새로운 진전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혁신을 묘사하는 다른 용어들도 비슷하다. 급진 혁신을 말할 때 우리는 레볼루션(혁명)이라 표현하고 점진 혁신은 에볼루션(진화)이라고 모양새 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매번 새 것을 찾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바퀴를 발명한다는 뜻의 '인벤트 더 휠'이라는 격언도 있다. 어찌 하든 바퀴를 동그란 모양 아니면 다르게 만들 수 없듯이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헛수고일 수도 있다.

모양은 같지만 나무에서 시작해 얇은 쇠를 덧대어 고무를 입히고 공기를 채워 지금에 이르렀다. '5년 이내에 출시한 제품으로 매출 40%를'이란 3M의 명제처럼 고쳐 쓸 지혜를 찾는 것도 진정한 통찰력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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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것 가운데 모듈러 방식이란 것이 있다. 소니는 워크맨을 만들면서 고객의 활용법을 봤다. 여섯 가지 기본 방식이 보였다. 재생만, 재생과 녹음까지, 재생 더하기 라디오, 기능 선택형 재생, 기능 선택형 재생에 녹음까지, 운동할 때 등이었다.

소니는 이것을 기본 플랫폼으로 정한다. 그리고 각각 세부 기능을 부여하고, 개발할 기술 목표를 정했다. 여기에 표준 색상, 스타일, 디자인 요소를 덧붙이자 개발 목표가 명료해졌다.

이제 모듈별로 관리하면 됐다. 다음 출시 때까지 꼭 개발해야 하는 것엔 우선순위를 뒀다. 1979년 버튼 몇 개짜리 TPS-L2로 시작해서 1984년 붉은 메탈 커버의 WM-30, 전면에 테이프나 돌비 선택 버튼에다 이퀄라이저까지 배치한 D6C형의 진노란색 스포츠 워크맨까지. 2010년 단종 때까지 끊임없이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은 것도 누군가는 이 모듈러 방식의 성공으로 꼽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마찬가지였다. 개발 목표는 모듈로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새 윈도 버전은 완전히 새롭지 않았지만 그 이전과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출시 계획을 맞추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핵심이 아니면 다음 버전으로 미루면 됐다.

일종의 시대 혁신 방식이 된 탓일까. 모듈러는 시세이도 같은 소비재 기업에도 적용됐다. 제품을 기능 모듈로 나누는 등 사이클마다 뭔가가 꼭 개선됐다. 실상은 매달 신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소비자 요구를 따라갈 수 있었다.

거기다 제품의 바뀐 기능은 마치 소니 워크맨이 스포츠용은 노란색의 좀 둔탁한 플라스틱이지만 전문가용은 검은색에 조그만 버튼과 입출력 단자로 성능의 만만찮음을 표시한 것처럼 패키지나 용기의 크기, 모양, 색깔 등으로 표현했다.

이제 모듈러의 눈으로 제품을 한번 바라보자. 제품을 부품 단위로 쪼개 보라는 뜻이 아니다. 그 대신 고객의 눈에 달라 보이는 뭔가로 보자. 우리 눈에 새 조합이 보인다면 배운 게 있는 셈이다. 새 제품이 보인다면 그건 덤이다. 그럼 여기에 시간도 입혀 보자.
한편의 시나리오가 떠오른다면 과거 3M, 소니, 시세이도가 시전한 모듈러 방식이 색깔을 바꿔서 우리에게 뭔가를 일러 준 셈인지도 모른다. 혁신에도 레트로가 주는 혜안이 있다면 모듈러 방식은 그 가운데 하나일 법하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4>모듈러 방식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