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기후변화 맞설 탄소중립 시대 온다 (5)순환경제가 미래 경제

페트병 재사용 등 각국 '순환경제' 추진
경제 가치 2030년 4조5000억달러 전망
EU, 지속가능한 표준 '행동계획' 발표
정부, 연말까지 순환경제 로드맵 마련

[특별기획]기후변화 맞설 탄소중립 시대 온다 (5)순환경제가 미래 경제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국내 기업 합성수지 생산량 및 국내 사용량

인공 합성수지 플라스틱은 인류 문명을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20세기에 등장해 불과 100년 남짓 역사에 불과하지만 반도체부터 휴대폰, 자동차, 건축물, 의류, 물건을 담는 용기 등으로 변해 우리 산업과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부식이 없고 어떤 모습으로든 변형 가능한 성질 덕택이다. 하지만 소재로서 부식이 없는 장점을 가진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 존재로 지구에 골치거리가 됐다. 바다와 땅은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화석연료로 만들어져 지구 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에 맞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이를 재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아가 재순환율 높이는 방향으로 우리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른바 순환경제다.

코로나19가 지난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을 휩쓸면서 1회용품 사용은 급격하게 늘었다. 음식점과 커피숍 등 매장에서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지면서 택배 배송이 늘고 1회용품 사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 물량은 2019년 대비 20.9%, 음식 배달은 78% 증가했다. 폐플라스틱은 18.9%가 늘었고 폐비닐도 9.0% 늘었다. 여기에 지난해 국민들이 사용했던 마스크와 비닐장갑 등을 더하면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지난해 말 플라스틱 소비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비단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구자원은 한정적임에도 지구 곳곳에 버려져 쓰레기 섬을 만든다. 제대로 소비하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물은 악취를 풍기는 음식물쓰레기를 만들고, 배터리와 비닐은 환경오염 주범이 된다. 순환경제가 필요한 이유다.

◇순환경제 가치 2030년 4조5000억달러

오세천 공주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순환경제는 생산부터 판매, 소비, 폐기 등 경제 전과정에서 순환성을 높여 폐기물을 줄이고 폐기물을 원료로 해 다시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순환경제가 이뤄지면 제품을 더 오래 소비할 수 있는 내구성 있는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 만들어지고 플라스틱 같은 화석원료 기반 제품은 화석연료로 재순환된다”고 말했다.

순환경제에 대한 관심은 유럽에서 활발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3월 '신순환경제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탄소중립과 자원효율을 위한 순환경제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폐기물을 줄이며, 지속가능한 EU 표준을 만들자는 것이 골자다. 전자기기·정보통신, 배터리와 자동차, 포장, 플라스틱, 섬유, 건설과 건물 등 모든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내구성을 높이고 중고제품 활성화는 물론 폐기된 플라스틱이나 원료 등을 다시 원료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EU는 관련 법률도 정비중이다.

엑센추어에 따르면 순환경제를 통한 경제적 가치는 2030년에 4조5000억달러로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 2019년 국내총생산(GDP) 1조6606억달러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세부적으로 보면 2030년까지 순환경제로 전환할 경우 재생에너지와 바이오 기반 연료 화학물 도입으로 버려지는 자원 감소로 에너지 부문에서 1조1000억달러, 물질 부문에서 5000억달러 등 1조7000억달러 규모로 경제적 가치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재활용 업사이클링 1조3000억달러, 제품 수명연장에 따른 가치 9000억달러, 공동이용 증가에 따른 6000억달러 규모 이득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엑센추어는 2030년까지 기존 선형경제가 지속된다면 자원공급 중단, 가격상승, 불안정으로 전체 세계 경제는 3조~6조달러 비용 부담을 안을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에는 그 비용이 10조~40조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생수병으로 옷 만들고 비닐을 기름으로 바꿔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 순환성을 높이기 위해 제품 생산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재활용의무 대상 품목은 페트병, 종이팩, 캔 등 포장재, 윤활유, 전지류, 타이어 등 22개 품목이 지정됐다. 매년 재활용 의무 생산자는 공제조합을 통해 의무를 이행할지 직접 또는 개별 위탁을 통해 재활용 의무를 이행할지 결정해 환경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생산자에게 재활용의무를 지움으로써 자원순환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다.

오세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EPR제도가 시행되면서 자원 재순환이 높아지고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오염이 줄었지만 여전히 영세사업자 등 사각지대가 있다”면서 “이를 순환경제로 접근하려면 열분해를 통한 원료 재사용, 페트의 재순환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선 합성수지 1514만톤이 생산, 647만톤이 국내에서 사용됐다. 이 가운데 우리 일상생활에서 비닐, 용기류 등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160만톤에 이른다. 대부분 1회용으로 사용되는 제품들이다. 폐기물로 버려지면 소각되거나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내 업계를 중심으로 이를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페트병이다. 물이나 음료를 담는 1회용 제품으로 사용되는 페트병은 폴리에틸렌재질로 이뤄졌다. 이는 다시 분해해 페트병이나 의류를 만드는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 1.5리터 페트병 40개면 기능성 티셔츠 한벌이 만들어진다.

플라스틱을 열분해해 다시 원료로 만드는 일도 이뤄진다.

SK종합화학은 미국 브라이트마크와 협력해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대용량 연속식 열분해 설비 구축을 추진한다. 대규모 열분해 기술을 도입하면 다양한 소재가 혼합돼 재활용이 어려운 폐비닐의 재활용 비중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SK종합화학은 열분해유로 나프타를 대체해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로 투입할 수 있는 후처리 기술을 개발 중이다. 폐플라스틱에서 뽑아낸 열분해유로 다시 플라스틱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 순환경제 로드맵 연말 제시

정부 차원에서도 순환경제를 이끌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순환경제정책포럼을 발족시켰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수립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10대 과제 중 하나인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해 연말까지 '한국판 순환경제 혁신 이행계획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조지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사는 “순환경제는 기존에 폐기물이 발생하고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춘 자원순환 정책과 달리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산과 소비단계에서부터 자원 재순환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환경제로의 속도감 있는 전환을 위해선 로드맵 수립과 병행해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 마련도 필요하다.

조 박사는 “플라스틱 원료의 재사용이나 페트 재사용을 위해선 석유산업법·식품포장재 관련법 등이 정비돼야 한다”면서 “순환경제 실현은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탄소중립 실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