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국가연구개발혁신법' 유감...'실핏줄 R&D' 작동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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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규호 대구기계부품연구원장
<송규호 대구기계부품연구원장>

정부는 과학기술기본법(2001년)과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 등에 관한 규정(2002년)을 제정, 여러 부처가 각 사업을 추진한 지 20년 만에 21개 정부 부처의 연구과제 관리 기준 일원화를 골자로 하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지난 1월 1일 시행했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규모가 2022년도에 연 23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혁신성장을 담보할 새로운 분야 R&D가 필요한 시점에서 30년 동안 연구 현장에 몸담아 온 필자로서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이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혁신'이란 용어의 의미를 살려 연구 현장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담보돼 우리나라 R&D 실효성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법 제정 배경은 R&D 예산이 늘어남에 따라 사업 종류와 과제 수, 이를 관리하기 위한 많은 규정과 시스템으로 인한 행정적 비효율을 개선하고 연구 현장의 자율성·효율성·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연구절차·연구환경·연구윤리라는 3개 카테고리를 상위 개념으로 두고 부처별 다른 규정과 시스템을 일원화한 것과 전체 연구 기간에 대한 일괄 협약으로 연구비 이월 사용을 쉽게 한 것, 연구비 사용 계획의 세부 산출 명세 없이 비목 단위로 총액만 기재하게 한 것, 연구기관의 연구지원 체계화 정도에 따라 간접비 계상 비율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 제도 개선을 누구나 수시로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연구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주요 변화다. 이와 함께 기관부담금, 기술료 등 기업 부담을 줄인 것은 기업 R&D 과제 진입 장벽을 낮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가 R&D 시장에 산·학·연·관 이해당사자들이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헤쳐가야 하는 시점에서 법 시행과 관련해 그 의미를 더할 제언을 하고자 한다. 최근 중소기업 R&D가 활발한 이유는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국가 R&D 프로그램이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지역 중소기업들은 연구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해 연구기관 지원이 필수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나 전문 생산 기술연구소는 지역 중소기업 입맛에 맞는 '실핏줄 R&D'를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산업 정책 육성이라는 틀에서 '기반 구축 사업'을 통해 지역에 있는 비영리법인 연구기관의 영세·중소기업 지원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 왔다. 그 덕분에 그동안 지역 영세·중소기업들은 문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출연연과 전문 생산 기술연구소를 찾아가는 대신 접근성과 눈높이에 맞는 비영리법인 연구기관 연구인력과 인프라를 활용, R&D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출연연이나 전문 생산 기술연구소에만 인건비 계상률(참여율)을 130%까지 계상하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 비영리 연구기관들은 이전에 130%로 허용되던 참여율을 100%로 한정하는 차별적 독소조항을 포함했다. 결국 지역 영세·중소기업들을 위한 연구 지원에 제약이 생긴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의 수십~수백억원 단위 R&D 과제는 물론 지역 주도의 1억원 이하 소규모 지원 과제까지도 일률적으로 연구자 참여율을 최소 10% 이상 요구한다. 거대·기초·정책 연구를 하는 출연연과 전문 생산 기술연구소 참여율 규정은 연구자 참여 충실도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지역 영세·중소기업에 대한 연구 지원은 단순 참여율 이전에 비영리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연구자의 소명 의식과 헌신이 더욱 중요하다.

기술 경쟁력과 미래 준비 역량이 부족한 영세·중소기업이 존속해 나가려면 산업 현장 말단에서 기업과 함께 고민하고 현장에서 뒹구는 '실핏줄 R&D'가 제대로 살아나야 한다. 연구 현장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연구기관 참여율 제한은 기업 지원에 제약이 되고, 영세 기업을 위한 연구 지원도 위축시킬 것이 자명하다. 기관들은 인건비와 간접비 확보가 유리한 대기업과 함께하는 공동 R&D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것이고, 지역 중소기업은 연구 현장에서 소외될 것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연구 현장의 행정 처리 간소화와 자율성 향상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R&D 혁신을 통한 기업 지원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 실효성을 갖고 안착하기 위해서는 영세·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실핏줄 R&D'를 실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개정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연구만을 위한 혁신이 아니라 '연구 지원을 통한 기업역량 강화'라는 수요자 관점의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송규호 대구기계부품연구원장 skh@dm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