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충동은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다
청계천에서 남쪽을 향해 발길을 옮기면 빌딩과 빌딩 숲 사이로 산이 보인다. 울창한 나무 속에 서울의 상징인 N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으로 알려진 목멱산(木覓山)이 600여 년 전부터 눈앞에 있다. 목멱산 봉우리엔 봉수대처럼 송신탑이 반짝거린다. 가까이 다가서니 송신탑은 2개다. 양팔을 벌린 듯한 목멱산은 동봉과 서봉 그리고 잠두봉으로 봉우리가 3개다. 넓게 펼쳐진 동봉과 서봉에 각각 철탑이 높게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방송과 통신이 바로 이 송신탑에서 시작했다. 동봉의 송신탑을 따라 걸으니 장충동 족발집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장충동의 대표 음식은 누가 뭐라 해도 ‘평안도식 족발과 냉면’이다.
장충동이란 동네 이름은 장충단에서 유래했다. 장충단(奬忠壇)은 대한제국 최초 국립 현충원으로 한양도성 안 광희문 지나 남소문 터까지 제법 큰 제단이었다. 바로 대한제국 시절 나라를 위해 순직한 충신들과 장병들을 추모하는 공간이었다. 120여 년 전 고종황제는 명성황후를 기리고, 을미왜란과 임오군란 때 돌아가신 분들을 국가의 이름으로 추모했다. 충성을 장려한다는 의미가 새겨진 공간이 ‘장충단’ 이다. 목멱산 아래 한남동으로 가는 언덕에 남소문이 있었고, 도성 수비와 방어를 담당하는 남소영이 있던 곳이다.

장충단 크기는 지금의 10배 정도였다. 동대입구역 6번 출구 앞 장충단비에서 수표교 지나 남소문동천 따라 리틀야구장, 국립극장까지 목멱산 동봉 아래가 장충단의 절반이다. 도로를 건너 한양도성 안 반얀트리와 자유센터, 서울클럽과 신라호텔 그리고 장충체육관까지 장충단이었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장충단에서 조총을 쏘며 지낸 제사는 금지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제단은 헐리고 벚나무를 심어 공원화했다.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獎忠壇(장충단)’ 이란 글씨와 을사늑약 때 자결한 민영환이 쓴 143자 찬문이 새겨진 장충단비는 땅속에 묻혀버렸다. 그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식과 ‘박문사(博文祠)’라는 사당이 세워진 가슴 아픈 역사가 서린 동네가 장충동이다.
장충단은 공원이 아니다. 장충단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1호인 장충단비가 있다.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끝내 참석이 거부된 후 순국한 일성 이준 열사의 상도 있는 곳이다. 또한 ‘지름, 반올림, 마름모꼴, 꽃잎 등’ 우리말로 바꾼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상과 유관순 열사 상까지 있는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며, 살아 숨 쉬는 역사 교과서 같은 공간이다. 장충단 길은 ‘역사의 길’, ‘사색의 길’로 목멱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이다.
장충동에 가면 수표교 아래 남소문동천 맑은 물 따라 도심 속에서 소소한 힐링을 할 수 있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이 철학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니체의 말이다. 우리 곁에 역사와 문화가 흐른다. 오늘 역사의 숨길이 가득한 장충단 길을 걸으면서 검색이 아니라 사색에 빠져 보자. 건강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장충동은 그냥 동네가 아니라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