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람과 기계가 공존하는 미래를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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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지은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

인간을 지칭하는 명칭 중에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말이 있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인공물을 만들어 사용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공물을 만드는 기술은 삶의 질을 높여주었고 물리적 시공간 영역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현대에 와서 우리는 다양한 분야 융합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 또한 인간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인체 증강'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인체 증강 기계는 신체 감각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계장비와 시스템을 일컫는다. 단순히 기능과 구조를 회복하거나 대체하는 것을 넘어 손실 또는 망실된 기능과 구조를 복원하거나 또 다른 증강을 촉진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로봇 손, 의수·의족, 인공 피부, 인공 눈, 인공 장기나 관절 등도 전부 인체 증강 기계 범주에 속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아이언맨' 슈트로 친숙한 외골격 로봇 역시 인체 증강 기계다. 팔이나 다리에 장착해 근력을 보조하며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을 지원하는 외골격 로봇은 본래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최근에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산업 노동자의 신체 활동 지원을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근육 옷감'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소프트 웨어러블 로봇 기술 발전으로 일상복처럼 편하게 착용하며 근력을 보조받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렇듯 인체 증강 기계는 장애인과 노약자 신체 불편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저출산·고령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택배, 제조, 돌봄 등 특정 움직임을 반복 수행하는 노동자 신체활동 보조를 넘어 건강한 사람을 위한 보편적 기술로 산업 생산성 향상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수준 연구진과 시스템을 보유해 인체 증강 기계 산업 활성화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가올 미래 산업 기틀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법·제도 정비와 맞춤형 정책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먼저 법·제도 정비라면 언뜻 규제 완화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람 생명과 안전이 달린 만큼 적절한 규제와 꼼꼼한 검증은 필요하다. 다만 인허가·심사 등 단순 행정 절차에 오랜 시간이 걸려 상용화가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담 인력 양성과 배치, 수정심사 절차 간소화 등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더불어 관련 가이드라인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보험 수가 등 의료 분야 정비 사항도 함께 논의된다면 신산업 수요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 차원의 분류 기준을 수립하고 분야별 청사진과 육성책을 제시할 수 있는 로드맵 구축이 필요하다. 지금은 인체 증강 기계 분야에 대한 분류 체계도 뚜렷하지 않아 연구기관마다 기능별(센서·액추에이터), 목적별(보조·증강, 대체·부가), 형태별(착용형·부착형·삽입형)로 유형을 구분하고 있다.

미래는 인체 증강 기계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회로 흘러갈 것이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고 자동차의 낡은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처럼 나에게 맞는 인체 증강 기계를 쇼핑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미래학자이자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기계에 쉽고, 인간에게 쉬운 것은 기계에 어렵다”고 말했다. 인간과 기계가 상호 보완적 존재로 관계 맺은 미래 사회 중심에는 인체 증강 기계 기술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 활동 영역을 확장해 삶의 질을 높여주는 변화를 선사할 것이며 우리는 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지은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 jelee@kim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