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강덕 포항시장, "미래형 의사과학자 양성,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백신개발 속도 더딘 주요 원인은 의사과학자 부족때문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국가적 차원 논의 본격화 절실
시기 놓치면 바이오헬스분야 국가 경쟁력 잃을 우려

이강덕 포항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한국식 감염병 대응시스템인 K-방역에 대해 외신의 일시 호평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한국의 백신 상황은 어떤가.

세계가 참전한 백신 개발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한국은 러시아, 중국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단순한 예방용 치료제가 아닌 국가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력과 막대한 투자에도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가 더딘 것은 과학과 의학 분야를 연결시켜 줄 의사과학자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세계 백신 시장을 선점한 주요 선진국의 힘은 해당 분야 질병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의사과학자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1964년부터 MSTP(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를 통해 매년 약 170명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 15년간 14명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미국이 바이오산업 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임상의사를 양성하는 의과대학이 대부분이며, 환자 진료 역량을 강조하다보니 기초의학 분야 연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의과대학에서 배출한 의사과학자 수는 108명으로 의대정원 대비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현 교육체계에서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정부도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 연구중심병원 지정 등 의사과학자 중요성을 인지하고 다방면의 노력을 시도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 차원에서 본격 논의할 때가 왔다. 더 이상 늦추면 우리나라 바이오·의료산업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의사과학자 양성 방법에서도 한계점을 노출한 기존 교육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혁신을 통해 미래형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형 의사과학자 양성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가. 세계는 지금 의료 혁명기를 겪고 있으며 시대가 바뀌면 의대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 인공지능(AI), 마이크로 로봇, 유전자가위 기술까지 공학적 기술이 의학과 접목하면서 공학적 능력을 갖춘 의사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환자 수 폭증으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수십년 내에 더 이상 의료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우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바로 공학과 의학의 접목에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미국에서는 공학에 의학을 결합한 공학 기반 의대 설립을 시작했다. 병원과 연계한 활발한 융합연구 수행과 함께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의대 교육도 의학뿐만 아니라 공학과 기초과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필자도 포스텍과 함께 세계 최초로 공대 기반 의대를 설립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어바나-샴페인캠퍼스(UIUC) 칼일리노이의과대학(CICM)을 방문,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함께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CICM 설립을 주도한 라시드바시르 UIUC 공과대학장은 “새로운 의대 설립을 위해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존스홉킨스대 등 미국 내 유수의 15개 의대와 의견을 나눴으며, 공학에 기반한 연구중심 의대는 기존 의대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분야를 넓혀 나가는 것인 만큼 반응은 굉장히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포스텍이 수년 전부터 공학 기반 연구중심의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포스텍은 연구중심 의과대학 전 단계로 오는 2023년부터 의과학대학원을 신설해 신약 개발·치료기술 개발과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융합연구를 통한 체계적인 창업교육을 통해 바이오벤처를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인 포스텍은 인근 가속기연구소, 생명공학연구센터, 나노융합기술원 등 다수의 우수한 바이오 관련 연구 인프라와 3000명 이상 풍부한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 등 국내 최고 수준 연구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미래형 의사과학자 양성과 기초의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최적지라는 평가다.

바이오산업과 연계한 기초의학 강화, 의료·생명과학 분야 기술혁신 및 바이오헬스 분야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중심인력인 의사과학자 양성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시기를 놓쳐 국가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한 때다. 그 중심에 포스텍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하루 빨리 정부 인가를 받아 중추적인 역할을 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강덕 포항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