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역세포가 다시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 항암제인 '면역관문억제제'가 왜 일부 뇌종양에서는 효과를 내지 못하는지 이유를 풀 실마리가 나왔다.
국내 연구진이 암을 공격하는 주역이 T 세포뿐 아니라 종양과 연결된 림프절의 B 세포와 항체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난치성 뇌종양 면역치료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 배충식)은 이흥규 생명과학과 교수팀이 면역관문억제제 일종인 항-CTLA-4가 종양과 연결된 종양 배수 림프절(암세포에서 나온 항원이 가장 먼저 모여 면역반응이 시작되는 림프절)의 B 세포(항체를 만들어 면역반응을 돕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뇌종양을 공격하는 새로운 면역 원리를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면역세포의 기능을 회복시켜 암을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관문억제제는 다양한 암에서 뛰어난 치료 성과를 보여왔지만, 교모세포종에서는 암 주변의 강한 면역억제 환경 때문에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T 세포(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면역관문억제제의 핵심 표적으로 여겨왔다. 반면 B 세포는 백신 접종 후 항체를 생성하는 세포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뇌종양 면역치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항-CTLA-4가 T 세포뿐 아니라 B 세포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험 결과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었다. 마우스 교모세포종 모델에서 항-CTLA-4를 투여하자 종양 크기가 감소하고 생존율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B 세포가 없는 마우스에서는 같은 치료를 해도 이러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B 세포가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과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B 세포가 활약하는 장소도 새롭게 밝혀냈다. B 세포 반응은 암세포가 있는 뇌가 아니라, 뇌와 연결된 목 깊은 곳의 림프절인 '깊은 경부 림프절'에서 활발하게 증가했다. 특히 이 림프절에서는 항체 반응 형성에 중요한 배중심 B 세포와 여포 보조 T 세포 반응이 함께 증가했으며, 이는 이후 면역글로불린 G(암세포를 표적으로 인식해 제거를 돕는 대표적인 항체) 반응 증가와 연결됐다.
생성된 IgG 항체는 뇌종양 세포 표면에 결합해, 대식세포(우리 몸에서 이물질과 암세포를 잡아먹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과정도 생체 내에서 직접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감염이나 백신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B 세포 면역반응이 난치성 뇌종양 면역치료의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기능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흥규 교수는 “향후 뇌종양을 인식하는 항체의 표적을 규명하고 림프절 기반 B 세포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난치성 교모세포종을 비롯한 다양한 암의 차세대 면역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김유민 박사후 연구원이 제 1저자로 참여했으며, 이흥규 교수가 교신저자로 KAIST 의과학대학원 오지은 교수가 연구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 이뮤놀로지'에 지난 10일 게재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