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50〉융합연구정책은 교육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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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인문사회 연구자가 과학기술과의 융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지. 질문은 큰 기대보다 부정적 생각 때문이다. 과학기술 연구는 생명윤리와 법률적 문제에서 인문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는 융합이라기보다 과학기술계가 인문사회 지식과 통찰력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과학기술의 윤리적·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ELSI'(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s, 신 과학기술 연구개발 지원 시 윤리·사회·법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 비용을 책정하는 제도)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최근 급부상한 '택소노미'(taxonomy)가 그것이다.

이것도 인문사회 연구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문사회과학적 사유와 관련이 있기에 상황에 닥쳐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과학기술 연구자는 인문사회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인문학자라고 해서 모두 인문정신이 탁월한 것은 아니며, 과학기술인이라 해서 모두 인문정신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인문학은 삶을 살다 보면 저절로 터득되기도 한다. 인문학이 삶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역시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 학습은 시간을 단축해 준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융합을 강조하지만 지금처럼 공고한 분과 체계를 유지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은 함께 공부하는 대상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고 조선의 정약용, 홍대용이 그랬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과학기술이 첨단화하면서 인문사회 연구자가 동시에 과학기술인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제품이 정보기술(IT)과 인문학 결합이 이뤄낸 결과라고 인문학을 치켜세웠지만 그것이 인문학만 중요하다는 것도 IT 역할을 축소해서 언급한 것도 아니다. 융합과 함께 서로에 대한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애플 1개 회사의 시가 총액이 국내 주식시장 총액과 유사하다. 이처럼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이 융합해서 만든 가치는 무한하다. 또 어느 한쪽만으로 풀 수 없는 복합적 문제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문제가 단순히 감염병과 보건 문제만이 아니며, 결국 인간과 사회 문제였음을 확인한 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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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융합은 자신의 것에 전문적이되 다른 분야를 어느 정도 알아야 길이 열린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영역과 어떻게 함께할지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융합 핵심은 과학기술인인 것 같지만 인문사회 연구자가 과학기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인문사회 연구자가 과학기술을 학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내가 인문대학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부학장으로 있을 때 인문학 교수 상대로 첨단 과학기술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강좌를 주기적으로 개최한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융합연구의 활성화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다. 그동안 살아 온 과정 때문이다. 우선은 최대한 서로 함께하는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경험 축적을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인문사회 학술 지원에서는 융합연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매우 한정된 예산으로 알려진 인문사회 예산 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인문사회 연구자가 과학기술과 융합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도록 예산 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으로 풀어야 한다. 교육은 학교 교육은 물론 시민 교육과 평생 교육이 포함된다. 이과와 문과로 분리된 장벽을 넘어 다른 분야의 학습이 더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 한정한다면 인문사회는 이공계, 이공계는 인문사회 교과목을 각각 좀 더 학습하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국가 정책 차원에서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연구와 교육을 함께 볼 줄 아는 미래지향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나와야 한다. 내가 이미 다른 지면에서 주장한 '학술연구수석' 신설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강재 서울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이강재 서울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이강재 서울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kanglee@nr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