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부터 규제 풀자] (2)AI, 빅데이터 인력 수급 문제

[신산업부터 규제 풀자] (2)AI, 빅데이터 인력 수급 문제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2019년 국가별 AI 기술인력 유·출입 현황현재 필요한 인재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인 앨런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해 연합군에 승리를 안기고, 세계대전 종전을 2년이나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각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AI)을 처음 생각한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AI를 탐색하게 된 계기는 체스 게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계가 체스를 둘 수 있을까?” 앨런 튜링은 194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유명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제 AI는 체스, 바둑과 같은 게임을 뛰어넘어 인류 미래를 책임질 산업과 기술의 '게임 체인저'로 성장했다. 그만큼 인력 쟁탈전이 치열하다.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대한민국은 AI 산업의 인력 확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산업부터 규제 풀자] (2)AI, 빅데이터 인력 수급 문제

◇AI, 빅데이터 인력 절실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는 새 정부 국정과제 수준으로 거론될 정도로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이 절대 부족한 가운데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이를테면 서울 소재 대학의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지방대학 쇠퇴를 우려하는 반대 여론에 밀렸다. 결국 서울과 지역 소재 대학이 정원을 고루 나눠 갖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듯하다.

그렇다면 최근 해외기업이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는 AI와 빅데이터 분야 국내 인력 수급은 원활하게 돌아가는 걸까? 당장 AI와 빅데이터 인력 양성 문제는 반도체 분야보다는 관심도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을 준다. 반도체보다 덜 심각해서일까, 아니면 더 심각함에도 단지 이슈로 전환되지 못한 탓일까. 그나마 반도체 산업은 국내 대기업이 관여해 전국적, 국민적인 의제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다. AI나 빅데이터 분야의 경우, 국내 산업의 주류(main stream)를 형성하지 못했고, 여론 형성력도 반도체 산업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AI나 빅데이터 분야에서는 공공 부문은 물론 민간과 융합 부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인력 수요를 요구하고 있다. '빅데이터 기반 정부' '디지털 플랫폼 정부' 등 다양한 수식어를 앞세운 정책과 공약으로 인해 공공 영역도 막대한 인력을 흡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민간 부문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다. 문제는 정확한 인력 수요를 산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동향을 통해 향후 국내외 산업의 진로를 가늠해볼 수 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과 첨단 기술 발전이 촉발하는 일자리의 대변화를 전망했다. 한국도 국내 10대 그룹 상당수가 AI, 빅데이터 분야의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인다. 대표 사례로 기업이 원하는 특정 분야의 인력을 배출하는 '계약학과 채용'을 들 수 있다. 국내 기업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AI, 빅데이터 인력에도 엄청난 갈증을 느낀다. 국내 10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로봇과 반도체 분야 인력이 당장 필요하다고 답한 기업은 두 곳에 그친 반면에 AI 인력이 필요하다는 기업은 6곳, 빅데이터 인력이 필요하다는 기업은 5곳에나 달했다.◇정보통신기술(ICT) 강국, 해외로 떠나는 인재

국내 기업 입장에서 AI, 빅데이터 인력 수급 문제는 당장 '발등의 불'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인력보다 해외로 나가는 국내 인력이 더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AI 인력 순유출국으로 분류됐다. AI 기술인력 1만명당 유출입 숫자를 보여주는 'AI 인력지수'에서 한국은 2019년 기준 AI 기술인력 유출입지수가 -35명(마이너스 35명)으로 나타났다. 또 과기부가 발간한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 이후 국내 유입되는 이공계 인력은 매년 4000명인데 반해, 유출되는 인력은 연간 4만명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임을 자임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전문가들은 보수와 근무 여건의 격차에서 원인을 찾는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이 분야 종사자 연봉이 국내 대기업의 2~4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주거, 근무 여건도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게 국내외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전언이다.

이처럼 한번 해외로 나간 인재의 마음은 되돌리기 쉽지 않고 기존 AI 인력 확보 경쟁은 갈수록 경쟁이 극심해진다. 여기에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취업을 미루는 장기 취업준비생과 구직 단념자까지 겹치면서 현장에서의 인력난은 더욱 격화하는 양상이다.

산업부가 향후 1조5000억원을 들여 신산업 등 미래산업에 필요한 기술 전문인력 14만명을 키우고, 첨단산업 특성화 대학원을 10개 이상 지정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산업 인재를 적극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에 동감하나, 실질적 학과 정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은 교육부에 있다. 학과 정원 조정은 쉽지 않을 뿐더러 학과를 신설하더라도 기존 학과 정원을 넘기 어렵다는 현실의 벽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지난해부터 교육부가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을 선정하고 대학 간, 학과 간 벽을 넘어 신기술 분야 인재 양성을 하겠다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실제적 진행 여부나 성과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학과 장벽 허물고, 기업도 담을 허물고

결국 국내 AI 인력난 해법은 대학 구조개선 및 재교육 방안과 맞물려 있다. 현재 국내 대학의 AI 빅데이터 인력 양성 시스템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다. 교육부가 확정한 2022년 대학원 정원 심사안에 따르면 2022년 8개 대학 36개 첨단 학과에 증원되는 석·박사 총 규모는 558명에 불과하다. 빅데이터 분야 171명, AI 분야 124명, 사물인터넷(IoT) 분야 77명 등이다. 해외로 유출되는 인력만큼도 충원하지 못하는 작은 규모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처음부터 AI나 빅데이터 인력 양성에 특화된 시스템을 갖춘 대학이 드물다. 컴퓨터공학과, 게임공학과, 소프트웨어융합보안학과를 확대 개편해 'AI 융합대학원'으로 전환하거나, 기존 정보통신소프트웨어공학에 데이터사이언스학과를 보태어 'AI 학부'로 개편하는 수준에 그친다. 학과 이기주의, 학과별 '칸막이' 풍토로 인해 충분한 지원과 깊이 있는 협업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제도적 지원 장치가 절실하다. AI, 빅데이터 과정을 설치하거나 MIT 미디어랩과 같은 융합학과로 전환하는 대학에는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AI, 빅데이터를 전공하지 않은 교수진에게도 적극적으로 협동 및 융합 연구를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 분야 교수들이 참여하면 연구비 지원을 확대하고 AI 빅데이터 소양을 쌓을 환경을 최대한 조성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전공 인력을 양성할 교원이 부족할 경우 학부에서 관련 과목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대학 학부에서 관련 소양과 기능을 익히게 하는 실습 과정을 크게 늘리는 쪽으로 자원과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일반학과의 경우 대학이 교육 여건과 사회적 인력 수급 전망 등을 반영해 총 정원 내에서 각 학과의 입학 정원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7조). 사회적 변화에 맞는 구조조정 및 재정지원을 위한 법적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기존의 의대, 한의대, 약대 등 직역 단체의 목소리가 큰 곳 위주로 교육부가 정원을 조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인력 수급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학과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기업 역시 인력 채용 시 전공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채널에서 훈련된 인력을 활용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 혁신에 의해 산업구조가 급변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시장은 유연성을 요구한다. 기업이나 대학도 인력 수급시스템 다변화를 통해 시장의 필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실제 해외에서는 학교 중심인 기존의 교육체계를 전 생애에 걸친 평생교육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비전공자, 경력단절자도 직업 훈련 과정을 거쳐 기업이 원하는 전문 인력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국내 기업도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와 협업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서울시나 정부의 산하기관이 운용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기업이 관여해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서울시는 디지털 분야 청년취업사관학교 프로그램을 2023년까지 12개소로 확대할 방침이다. 과학기술부 역시 데이터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등을 다양하게 운용하고 있다. 연령이나 수준을 기준으로 교육 대상을 세분화하고 강사의 역량을 제고하는 경우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전략 산업을 떠받칠 양질의 인력 양성에 공공과 학계, 산업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AI 시대 승패는 결국 인력에 좌우된다. 전문인력이 있어야 전문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한다. 사람을 키워야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신산업 성장의 토대도 탄탄히 다져진다. 여름 해변을 가르는 서퍼들은 '파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도를 타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예컨대 파도와 한 몸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파도가 그를 삼켜버린다. AI와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대전환'의 파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기업과 대학이 이 파도를 탈 거면 파도와 한 몸이 돼야 한다. 우리는 그럴 준비가 돼 있을까?

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장 ych5534@sit.re.kr

<필자 소개>

임성은 원장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출제·선정 위원, 서울특별시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책연구원 평가위원를 거쳐 현재 서울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