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권력](https://img.etnews.com/photonews/2209/1566501_20220905135126_083_0001.jpg)
과학기술은 자연현상 원리를 밝히고 실생활에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쓰임새에 따라 이익을 주거나 피해를 발생시킨다. 반도체, 5G, 스마트폰, 원자력 등 산업기술은 제대로만 쓰면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핵, 미사일, 전투기, 폭탄 등 군사기술은 전쟁을 억제해서 국민을 지키지만 큰 해악을 가져올 수도 있다. 개인정보를 지키는 기술은 뒤집으면 해킹기술도 된다. 미·소 냉전 시절에 불을 뿜어대는 전쟁은 거의 없었다. 군사기술 개발을 통해 긴장을 유지하면서 우주개발 등 자존심을 건 경쟁을 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과학기술은 정보통신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플랫폼·데이터·인공지능으로 싸운다.
조선시대 초기엔 해시계·물시계 등의 개발과 간의·혼천의 등 천문 관측기구를 통해 절기나 시간에 따라 농경을 돕는 농업기술을 중시했다. 그러나 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일본을 견제해 평화를 찾는 시스템을 택하면서 독자노선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을 중시할 수 없었다. 기득권을 중시하는 왕조가 사회변화를 촉진하는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이유다. 병자호란으로 중국에 끌려간 소현세자가 아담 샬과 교류하고 첨단 과학기술을 도입하려 했지만 인조 등 집권세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과 경쟁할 생각이 없었고, 혹세무민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학파의 노력도 정권 앞에서 무너졌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선 새로운 상품과 그 제공 구조를 변혁해서 소비자 입맛에 맞는 거래 조건을 만드는 것이 혁신이다. 과학기술이 앞서고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이동통신의 발전 과정을 보자. 2G에서 통화 및 메시지를 제공하는 것에 문제가 없지만 3G, 4G, 5G로 빠르게 넘어갔다. 세대를 앞선 기술 진보가 스마트폰 등의 미래를 가능하게 했다.
현대 사회에선 모든 정권이 과학기술의 수호자임을 자처한다. 과학기술은 국방력이 강한 나라에 유리하다. 군사 로켓, 미사일 기술이 좋은 나라가 위성을 만들기 쉽다. 인터넷은 국방 네트워크에서 비롯됐다. 과학기술이 경쟁의 핵심 수단이 되고 국가 경쟁력 및 부의 증대를 직접 일으킨다. 그러나 정권의 짧은 임기처럼 그 정권에 빌붙고자 하는 학계·업계에서 단기 성과만을 추진하면 상용기술만 중시하고 원천기술을 홀대하게 된다. 상용기술을 개발하고도 원천기술 해외기업에 많은 로열티를 내는 이유다. 정권은 표를 구하기 위해 학계·연구계·기업계를 위원회, 협회, 단체, 학회 등 무리를 이루어서 세를 과시한다. 정권에 공을 세우면 공직뿐만 아니라 연구비·보조금·사업 취득 기회를 얻을 공산이 높아진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할 과학기술 연구의 순위는 밀리기 쉽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한 시대의 과학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기존 과학기술을 지지하는 과학자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다수가 돼야 가능하다고 한다. 결코 과학기술에 관한 진리의 발견 그 자체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허구를 지적하는 견해도 많다. 수천 년을 지탱해 온 천동설은 그 당시 천문학 주류의 핵심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빛이 입자라는 견해는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이론으로 대체됐다. 지금 과학기술이 밝혀낸 진리도 현재는 물론 언젠간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과학기술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정권 교체가 있을 때마다 많은 과학자가 정부에 고위직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의 성과를 기억하긴 어렵다. 그들이 단기성과를 내지 않는 것이 미래를 위해 나을지 모르겠다. '주목받지 않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 시간에 오직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을 권력에서 분리해야 한다. 자유로운 연구와 융·복합 소통 기회를 높여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 사회를 굳건히 떠받치는 과학기술 인프라를 만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