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36〉AI 시대의 '몸':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웹 관련 뉴스 일간지인 슬레이트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한때 전 세계인의 네이버 지식인 사이트였던 쿼라(Quora)가 위기라 한다. 과거 매달 순 방문자가 1억9000만명에 달하고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영화배우 애쉬튼 커처 등의 유명인마저 솔직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달 정도로 좋은 질문의 가치를 강조해 사용자에게 신뢰받고 이용자의 충성도가 높던 해당 서비스가 근래의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핵심 사용자가 대거 이탈했다고 한다. 쿼라는 가입 시 프로필의 실명제를 원칙으로 했기에 사실상 사람이 질문하고 전문가인 사람이 양질의 답변을 제공하는 명확한 가치 구조를 제안해 왔다. 그러나 AI 채팅 플랫폼에 투자금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사용자의 답변을 AI 모델 훈련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약관을 무리하게 변경하는 등 커뮤니티의 정체성의 중심을 인간에서 AI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확인되면서 쿼라에 대한 이용자의 시선은 차가워지고 머지않아 AI 챗봇만 활동하는 유령 도시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커뮤니티 내 발생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전체 과정을 AI에 의해 재편하려는 의도는 타당해 보이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미 우리는 챗GPT와의 대화를 번역, 코딩, 작문 등 다양한 업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AI의 답변을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문과 답변이 제공했던 가치 구조와 사람과 AI 사이의 질문과 답변이 이루는 앞으로의 새로운 가치 구조 사이에는 인식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있음을 확인할 필요도 있다. 쿼라 내 유명 프로필의 전문가가 자신의 그동안의 기록을 삭제하고 사이트를 떠나는 주된 원인도 같은 맥락에서 확인 및 이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미묘한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덴마크의 사회과학자 찰리 스트롱은 '스마트폰과 기억의 미래'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적 산물이 단순히 우리가 사용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앤드 클라크와 데이비드 찰머스의 '확장된 마음 이론'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이 인간의 기억 능력 확인에 있어 뇌만을 고려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는 인식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는 우리의 생물학적 기억을 변화시키거나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제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글쓰기에 사진, 디지털 오디오 녹음, 영상까지 추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우리의 생물학적 능력, 즉 두뇌를 사용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지식과 기억의 체계를 가져온다는 점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에는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을 담아낸 요소들로 채워진 X룸이라는 공간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커플 아이템, 편지뿐만 스마트폰으로 담아낸 여행, 생일, 데이트 등의 순간을 담은 영상 그리고 카카오톡 메시지 창의 캡처 이미지마저 등장한다.

지난 20년 동안 스마트폰이 도입되고 개선되면서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기억을 기록하고 불러올 수 있는 다양한 매체에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스마트폰에 얽힌 기억 시스템은 기존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능력을 제약하고, 클라우드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많은 방식으로 기억을 가능하게 하며 전에 없던 혼란을 불러온다. 100GB가 넘는 저장공간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사진을 정리하지 못해 실은 늘 용량 부족에 시달린다는 연구 참가자와의 대화는 꽤나 자주 경험해 왔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보다 앱 기반 정리를 선호하기에 기억의 저장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정리의 어려움은 극대화된다. 또 모든 순간을 즉각적으로 사진 찍고 캡처 및 저장할 수 있어 수많은 경험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끊임없는 기록이 기억을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즉 스마트폰과 기억에 대한 연구 사례에서 확인되듯 기술적 진보가 단순한 기능적 확장이 아닌 기술과 결합된 일상적이고 내재적인 새로운 어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관련해 새로운 기술이 그동안의 기록과 기억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라는 기술 중심의 질문 앞에 종종 인간 중심의 모호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려 할 것인가?' 올바른 질문의 가치로 한때 웹을 점령했던 쿼라가 AI에 대한 투자와 도입을 기획할 때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으면 좋았을 질문이 아닐까 싶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