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후변화와 러-우 전쟁 영향으로 유럽은 심각한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코로나19 이후 부각된 식량수입 의존도 문제와 기후변화·전쟁으로 인한 농업생산성 저하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 ‘신(新) 유전체 기술(NGT)'에 주목하고 있다.
EU는 2001년 제정한 유전자변형농수산물(GMO) 지침에 따라 생명공학기술과 그 산물에 대해 보수적인 규제정책을 시행해왔다. 이 지침은 당시 생명공학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제정했기에, 그 후 개발된 새로운 생명공학기술과 유래 산물에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2016년 프랑스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외래유전자가 도입되지 않은 유전자가위기술 적용 식물에 대한 규제 방향을 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사법재판소는 2018년, 유전자가위기술 적용 식물도 GMO에 해당해 기존 형질전환작물과 같은 규정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많은 과학자와 개발자들은 소비자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식물 개발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7월 NGT 적용 식물 별도 규율 법안을 제안했고, 2월 EU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현재 EU 이사회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3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2023년 GMO 주요통계를 발표하며 2023년·2024년 바이오 분야 주요 키워드로 NGT를 선정한 바 있다.
이번 법안 제안 배경에는 코로나 팬데믹과 러-우 전쟁에 따른 EU 식량자급률 제고 필요성이 자리하고 있다. NGT를 적극 활용할 경우 농업생산성 향상, 기후변화 대응력 제고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NGT는 기존 GMO 기술 대비 안전성이 높고 개발 속도가 빠르다는 강점이 있다. 유전자가위기술 적용 과정에서 외래 DNA가 도입되지 않아 자연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와 유사한 수준의 생물학적 안전성을 지니고 있으며 정교한 유전자변형이 가능해 개발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다만 NGT 역시 윤리적 논란이나 생태계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EU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법안에는 NGT 제품 사전 검증, 추적관리, 소비자 정보제공 등을 규정하고 있다.
EU의 이런 정책 변화는 전 세계 바이오산업과 기술규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U 정책은 회원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규제정책에 모범 사례로 작용하는 편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바이오신기술 육성과 합리적인 안전관리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첨단바이오 생산 규모를 200조원 규모의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바이오신기술 투자와 인프라 확충,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신기술을 통해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가 가능한 혁신적 의약품 개발, 노인성 질환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 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바이오 에너지 기술 개발, 스마트팜, 차세대 감염병 대응 등 인류가 직면한 난제 해결을 위한 핵심기술도 지원한다.
다만 기술발전 속도에 맞춰 제도를 실시간 정비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기술선진국 규제 변화 추이를 면밀히 검토하고 국내 여건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류가 직면한 식량 위기와 기후변화에, 전 세계가 안전하고 지속적인 먹거리 확보를 위한 기술 도입과 함께 윤리성 확보, 소비자 이해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엄격한 안전성 평가와 투명한 정보공개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기술발전이 안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정책팀장 sykim@kribb.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