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상무부 장관 지명자인 하워드 러트닉의 반도체 보조금에 대한 재검토 발언으로 미국 정부의 '반도체와 과학법'(이하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이 불확실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비판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그것이 현실화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2022년 8월 반도체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 반도체 제조, 연구 및 개발에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일부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와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으로 배정됐다. 보조금 규모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설비 투자의 15%까지로 정해졌으며, 지급 대상은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도 포함했다. 반도체 제조업을 미국에서 다시 활성화하고자 하는 목적이 명확한 정책이었으며,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등 해외 기업이 이에 부응해 2023년부터 미국에 새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SK하이닉스도 미국 투자를 결정했고 바이든 행정부에서 보조금 지급을 확정했다. 미국 정부의 당근 전략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줄곧 비판해 온 인물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에 줄곧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을 아시아 지역(특히 대만)에 빼앗겼다고 주장했으며, 해외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관세를 부과해 생산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 바이든 행정부가 당근을 줘서 해외 기업을 유치하려 했다면, 트럼프의 주장은 당근이 아니라 채찍질해서 해외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법을 폐지하거나 수정할 것이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도체 법에는 미국 내 반도체산업 강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반도체산업 발전을 견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중 무역 분쟁의 포문을 열었고 기술 패권 경쟁으로까지 발전해 온 결과이며, 반도체 제조업 부활은 트럼프 대통령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법의 폐지보다는 수정 쪽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금 동향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보조금을 조정 내지는 폐지하고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부과를 통해 제조 공장을 유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반도체 제조업에서는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첫째, 반도체는 1997년 발효된 WTO의 정보기술 협정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만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현재 세계 통상 질서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신뢰를 실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에 부담감이 큰 정책이다. 따라서 만약 시행하더라도 고율의 관세부과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미국은 반도체가 사용되는 전기·전자 첨단 제품의 최종 소비는 많이 하고 있지만 직접 반도체를 구매해서 소비하는 비중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불과하다. 즉, 관세가 부담되어 제조 공장을 미국에 건설할 만큼 중요한 시장이 아닐 수도 있다. 이는 대만의 TSMC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은 우리 기업이 미국 투자를 결정한 이유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보조금이 없어지더라도 미국 투자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미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보조금 효과가 사라진다면 투자 규모나 생산 제품 포트폴리오 등은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요구했으며, 종업원의 복지 수준까지 간섭했었다. 보조금이 없어진다면 오히려 이러한 제약들로부터 우리 기업이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반도체 보조금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 기업이 반드시 어려워질 것이라는 걱정은 과도한 기우일 수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ypkim@kiet.re.kr